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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vo My life in 밴쿠버

다섯 아이를 두고 떠나버린 엄마, 어떻게 눈을 감았을까

by cheersj 2020. 12. 20.

 

몇 해 전

남편의 지인 집들이에 초대 받아 잠시 들렀던 저녁 식사에서

그녀를 처음 만났다. 

우리 딸 또래의 큰 딸과 어린 남동생을 돌보며 분주하던 그녀

남편에게 존댓말을 하는 모습이 신기해 인상적이었고

나이 차이가 별로 나지 않는 남매를 통제하기에

엄마가 너무 착하기만 한 거 아닌가 하는 우려를 잠시 했던 기억이 난다. 

그녀의 남편은

이민 후 이런 저런 비즈니스에 열심히 도전하며 가족들에게 헌신하는

성실한 사람이라고 들었다. 그리고 또 싹싹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그 다음해

그녀가 셋째 아이를 낳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또 얼마의 세월이 흘렀나 했더니

넷째 아이를 가졌다는 소식이 들렸다.

아 정말 축복이네 

하는 사람도 있었겠지만

난 사실 

맙소사

그랬다.

정말 미안하지만 착한 엄마의 분주한 뒷모습이 먼저 머리에 떠올랐고 

이젠 둘 아니라 넷이라니. 힘들겠다, 하는 생각부터 들었다.

 

또 얼마의 세월이 흘렀을까

드디어 그녀가 다섯째 아이를 낳았다는 소식이 들렸다.

 

사이 좋은 부부가 이국 땅에 와 애써 가정을 일구고 정착해

사랑스런 아이를 하나 둘 셋 넷 다섯 그렇게 나으며 잘 살고 있으니

축복 받아야 하고 모든 일은 그렇게 순조로웠어야 한다.

그런 거 아닌가. 그런데

 

엊그제 

12월 16일

그녀가 

2세, 4세, 6세, 8세, 10세 다섯 아이들을 남겨두고

눈을 감았다.

병명은 뇌종양이었다. 

 

그녀의 가족을 아꼈던 지인들이 만든

'Go fund me' 기금 모음 page에는

몇년 전 곱게 얘기 나누던 그녀의 활짝 웃는 모습이 

그리고 아이들의 올망졸망 모습이 

설마 하며 열었던 내게 새로운 소식을 확인해주듯 

천연덕스럽게 떠 있었다.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약간 소름이 끼쳤던 것도 같다.

이렇게 말도 안되게 가혹한 일이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구나.

이 아이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차라리 아무 인지도 하지 못하는 어린 아기들은 좀 나으려나

우리 딸 또래의 어린 첫 아이는

엄마의 갑작스런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퇴근 후 아이들 저녁을 먹이고

깨끗이 빨래와 건조가 끝난 딸아이의 속옷을 곱게 접어 서랍에 넣어주며

갑자기 

가슴 속에서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랐다.

가슴이 먹먹해졌다. 

엄마가 없으면

어쩌라는 거야.

10살 아이와 네명의 동생이라니. 

 

찾아가 볼 수도 없는 이 상황이 또 기가 막힌 것이다.

비상 시행령으로 사적 모임이 금지된 지금

가족이 있는 사람들은 지인의 집을 서로 방문조차 하지 못한다. 

아, 정말 어쩌란 말인가.

 

다행히 Go Fund Me에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진 많은 분들이

정성을 모아 위로를 전하고 있었다.

 

얼마 전부터

삶의 소중한 순간 

그리고 죽음 

허비하고 싶지 않은 나의 시간들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며 반성해왔던 나

 

토요일 저녁 휴식의 시간

오늘 따라

"나 이제 소리 못 들어~" 하며 이어폰 꽂고 음악 들으며 랩탑을 열자

"응 알았어~"

하며 슬며시 TV를 끄고 아들 운동 시키려 데리고 내려가는 남편이 고맙고

쿠키 만들자고 왔는데 엄마가 5분만 달라고 하자 쿨하게 오케이 하는 우리 딸이 너무 사랑스럽고

"내려오래 아빠가~" 하니 "엄마, 아무거나 입을까? Coming~!" 하고 대답하는 씩씩한 아들이

너무나도 소중하다. 

 

나의 오늘이 그냥 흘려버릴 하루가 아닌 것이다.

오늘 내게 온 하루가

누군가가 간절히 살고 싶어하던 그 하루다, 그런 흔한 말이 있지만

알고 있었지만

이젠 그런 말들이 예전과 다르게 가슴에 사무친다.

 

난 앞으로 매일매일

소중한 남편과 아이들 곁에서

지키고 바라보고 보살피고 사랑하며 보낼 수 있는 

이 하루 하루에 감사하고 또 감사하며 살 것이다. 

 

선한 그녀의 모습을 떠올리며

어떻게 눈을 감았을지 가슴 아파하며

좋은 곳에 가서 아이들 잘 지켜주길

그리고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말고 편히 쉬기를 

진심으로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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