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ravo My life in 밴쿠버

그래도 꿋꿋하게

by cheersj 2021. 4. 4.

 

 

 

3월 29일 BC 보건당국의 락다운 발표로

밴쿠버의 모든 식당들이 다시 실내 테이블을 치워야했다.

코로나19  3차 확산으로 확진자가 연일 1000명 이상을 기록하는 상황에서

부활절 연휴를 앞두고 사적 모임 제재를 완화할 수도 있다던 호언 장담은 섣불렀던가.

부랴부랴 내놓은 대책은 다시 셧다운 그리고 백신에 희망을 걸자... 

이제 겨우 활기를 찾아가던 식당들은

다시 테이프를 두르거나 치워버린 테이블로 썰렁한 어둠 속에서

테이크 아웃 주문만을 받고 있었다. 

 

점심 메뉴를 고민하다 

후배와 수다를 떨며 찾아간 곳은 북창동 순두부

우린 거기서 사이좋게 매운맛 섞어 순두부와 고기 콤보를 픽업했다.

북적이던 실내는 어두컴컴했고

내일 봐 하며 우린 헤어졌다.

후배는 오후 재택 근무라 집으로

난 사내 근무라 다시 사무실로.

 

퇴근 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

아이들의 레슨 그리고 남편의 운동 겸 연습 시간

나를 제외한 모두가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동시에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게다가 기다림이라는 걸 해주고 있는 동안 

내게 당당하게 선사하는 달콤한 휴식의 시간

 

그런데 역시나 

지난 주만 해도 웃음 소리와 벽난로의 불빛으로 꽉 차 환했던 

내가 좋아하는 레스토랑의 실내는 텅텅 비어 있었다.

 

하지만 난 그래도 꿋꿋하게

이제는 친해져버린 웨이트레스와 인사를 나누고

야외의 패티오 자리에 나가겠다고 말했다.

해는 이미 져 어둑어둑해지며 쌀쌀해졌고 

햇살 아래 앉아있던 마지막 일행들도 이젠 떠나는 중이었다. 

 

조금 추울텐데 괜찮겠냐고 묻는 쾌활한 그녀

난 미소 지었다. 

당근 괜찮지

나의 완전한 행복의 순간을 위해서라면.

 

그리고 밤바람에 캐나다 국기와 BC주 깃발이 나란히 출렁이는

이상하게도 가슴 뭉클한 곳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냥 가로등처럼 생긴 예쁜 히터 옆을 선택했을 뿐인데.

흣날리는 깃발을 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

 

의도하지 않았는데

그냥 난 이 락다운의 상황에서

꿋꿋하게 얻어낸 행복을 즐기기로 했다.

 

길고 긴 예쁜 파인트 잔을 쥐니

손끝부터 시린 차가움이 전해졌다. 

그 차가운 밤바람 속에서 마시는 한모금의 IPA가

꿀처럼 달콤했다. 

 

말하지 않았는데도 살짝 갖다 놓아준

뜨거운 레몬티 잔에 언 손을 녹여가며

난 꿋꿋하게

나의 시간을 즐겼다. 

 

그 누가 금발머리 여자는 영리하지 못하다는 망언을 했던가

IPA를 즐기는 내가

추운 날씨를 아랑곳하지 않지만

그래도 손은 시릴 거라고 생각한 

나의 웨이트리스 친구 센스는 정말 기가 막힌 걸...

 

보니 헨리 보건장관이 앗아가려 했으나... 

밤바람 속에 나부끼는 빨간 메이플리프 국기와

금발머리 쾌활한 웨이트리스 친구의 배려

그리고

손 시릴 정도로 차가운 IPA와 따뜻한 레몬티 덕에

난 오늘도 꿋꿋하게 행복을 지켜내고 말았다. 

'Bravo My life in 밴쿠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감사할 것인가 불평할 것인가  (10) 2021.05.31
아들, 내 아들  (12) 2021.04.15
눈물 덜어놓기  (10) 2021.03.08
Missing Person  (15) 2021.03.07
조강지처를 버린 남자  (12) 2021.03.06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