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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vo My life in 밴쿠버

백신 맞던 날

by cheersj 2021. 6. 4.

 

망설이고 고심하다 얼떨결에 예약해 놓았던 백신 접종의 날이 밝았다.

아주 드문 경우지만

아스트라제네카 접종 후 혈전으로 인한 사망 사례들을 보며

약간의 두려움과 아직 남은 불신으로 최대한 접종을 안 받으려 했지만

지금 받아야 화이자를 맞을 수 있다는 주변의 권유 그리고

접종률 70퍼센트를 넘는 BC주의 상황을 반영하듯

회사 내 접종률도 80퍼센트를 웃도는 분위기에서 더이상 버티기도 그렇고

무엇보다 아들 연령인 12세 이상 청소년들의 접종이 시작되었으니

아직 방학이 멀리 있는 아들의 안전을 위해서도 결심을 해야했다.

남들 다 맞을 때 까지 기다리겠다던 남편도 나의 예약에 끌려가듯 마음을 먹고

그렇게 셋이서 오후 1시 예약 장소로 향했다.

 

6월 초 이른 여름날의 햇살은 눈이 부셨고

적당히 기분좋게 더웠다. 

차를 세우고 잠시 걷는 동안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오랜만에 아들 손도 잡고 걸어보고 

미소가 자꾸 배실배실 나오기 시작했다. 

 

친절한 안내에 따라 간단한 접수를 마치고 함께 자리에 앉았다. 

커뮤니티 센터에 장비를 갖춘 넓은 클리닉,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모두가 질서정연했고 조용했으며 인사와 미소들로 평화로웠다.

마치 재난 영화의 한 장면처럼

긴장감이 도는 소란스런 방역의 현장을 아주 잠깐 상상했었는데

역시나 아니었다. 

 

어느새 이렇게 자라 어른들과 함께 있어도 잘 구별이 안가는 우리 아들

그래도 내겐 아직도 아이 같아서

지정석 세 자리에 앉고 보니 내 앞이라 순서대로, 아들이 맨 먼저 맞는 건 줄 알고

무서울까봐 자리를 바꿔줄까 잠시 생각하다 혼자 피식 웃었다.

그런데 카트와 함께 의사와 간호사가 뒤에서부터 오고 있었다.

이거 맞고 무사하겠지, 괜찮겠지. 조금 긴장도 하며

아프진 않을까, 아이 참 애를 둘이나 낳았는데 지금 뭔 생각을. 

와 그때 그 아픔들을 어떻게 겪었을까 하는 잡생각을 하고 있는데

키가 큰 인도계 캐나다인 의사가 친절히 와서 물었다.

내 차트를 보더니 "혹시 한국 분이세요?"

헉, 이런 사람 많지만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니지 않은가. 

"네, 맞아요 한국말 잘하시네요"

보통 이렇게 한마디 해주면 그만 하는데 이 청년은 너무 기쁜 나머지

계속 한국말을 하고 싶어해서 내가 너무 답답해졌다.

그래서 그의 어눌한 한국말이 답답한 난 그만하란 뜻으로 영어를

그래도 자기 외국어 실력을 뽐내고 싶은 그는 계속 어눌한 한국말을

그렇게 이상한 대화 몇마디를 주고 받았다.

그리고 간호사가 생년월일이 뭐냐고 괜히 묻는 사이에 주사는 끝났다. 

 

접종을 마친 후 혹시 모를 부작용이 있을 수 있으니 기다리란다. 

15분 대기하며 여유있게 아들 등판을 바라보며 또 주책맞은 행복에 젖었다.

남편이 내심 서운해하는 이유를 좀 알 것 같다.

연애할 때 뒤통수만 봐도 좋았던 남편인데

이젠 앞통수인지 뒤통수인지 별 관심 없고

아들은 이렇게 잠시 등판만 보고 있어도 입이 벌어지니 말이다. 

대기 시간이 너무 짧게 느껴졌다.

내겐 아들 등판을 실컷 보며 사람 구경도 하는 휴식시간이었다. 

 

그렇게 우린 장하게 백신 접종을 마치고

삼선간짜장과 깐풍기를 먹으러 희래등으로 향했다. 

뭔가 큰 일을 해낸듯한 뿌듯함에 Sprite로 건배도 했다.

딸 학교가 끝날 시간이라 픽업 가야하는데

넘 맛있고 좋아서 계속 먹다가 좀 늦었다.

미안해 딸아, 너 없이 좀 즐겼어

 

칭찬해 오늘을. 

백신 접종도 무사히 즐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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