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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떤 엄마일까 어젯밤은 한주 동안 수고한 내게 주어지는 가장 달콤한 시간 금요일 밤이었다. 시원하게 샤워를 하고 놀 준비를 끝낸 뒤 내려가자 남편도 금요일 밤을 즐길 태세로 골프 채널을 보며 소파에 널브러져 있었다. 영화 볼래? 하기에 난 펜트하우스 볼거니까 골프 재밌게 보라고 말했다. 오케이, 한명 처리. 이제 두명 남았다. 다시 올라갔다. 방학을 즐기느라 아침에 늦잠을 잤던 아이들은 밤 10시가 넘도록 잘 생각이 없어 보였다. 변성기 아들의 저음 말소리가 두런두런 들리는데 아들 방 문이 닫혀 있다. 확 열었다. 일부러 그런 것 같다 왠지 얄미워서... 뭐가 그렇게 재밌니 엄마도 안찾고? 침대에 누워 전화로 친구들과 얘기하며 영화를 보고 있었다. 샤워하라고 잔소리 한번 해주고 10분 경고를 줬다. 딸 방을 들여다보니.. 2021. 7. 18.
10살 딸이 멋져 보인 날 오늘은 수요일 정말 오랜만에 휴가를 냈다. 집에서 9시쯤 출발해 한시간 더 넘게 달려와 Chilliwack의 한 골프코스 레스토랑에 앉아 정말 오랜만에 랩탑을 열었다. 회사에 앉아있을 시간에 멀리 떨어진 곳에 와 있으니 이 아침의 상쾌함과 해방감이 고스란히 느껴져 가슴이 트이는 듯 하다. 오늘 대회는Vancouver Golf Tour, 프로선수와 아마추어 쥬니어 선수가 함께 참여하는 여러가지로 의미있는 경기이다. 나의 10살 딸은 쥬니어 대회에서 같은 나이끼리 경쟁만 해보았지 어른들과 함께하는 경기가 처음이다. 오빠가 나갔던 경기에서 멋진 상품을 받아온 걸 보고 질투가 났는지 본인도 나가게 해달라 하도 졸라서 경험해보라고 결정하고 온 가족이 따라나섰다. 10시 50분 첫 티샷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대회때.. 2021. 7. 8.
한인타운 살인사건을 떠올리며 20여년 전이었을까 빨간 간판의 대형 한국 수퍼마켓이 생겼다는 소식에 멀리 노스밴쿠버에 살고 있던 우리는 신이 나 주말마다 30분 거리 한인타운으로 장을 보러 가곤 했었다. 반가운 한국 과자와 라면 그리고 김치 등을 신나게 사고나면 바로 옆 빵집과 분식점이 같이 있는 작은 식당에 들러 홍합에 국물이 푸짐한 짬뽕 한그릇을 사 먹은 뒤 다음 코스는 비디오 테이프 대여점. 그 시절엔 한국의 드라마와 쇼프로그램을 녹화한 비디오테이프를 대여해 주는 가게가 한인타운과 메트로 타운 등 곳곳에 있었고 유학생 부부였던 우리는 주말이나 친구들이 모였을 때 한국 오락프로그램을 보며 함께 웃고 떠들며 언어의 자유를 만끽하며 머리를 식히곤 했었다. 그 수퍼마켓을 중심으로 한인타운은 점점 활기를 띠었고 위층으로 연결된 길다란 건.. 2021. 6. 17.
워킹맘의 Volunteer Hour 채우기 해마다 5월이 되면 나는 딸의 학교에 가서 새빨갛고 긴 졸업가운 50개를 낑낑 들고 나와 열심히 차 트렁크에 싣는다. 집에 오면 다시 열심히 옷장으로 실어나른 뒤 가지런히 걸었다가 일을 시작한다. 세탁기에 찬물 사용 Gentle Wash를 선택한 뒤 5장씩 10번을 돌려 세탁이 끝나면 한장씩 펼쳐 앞 뒤 소매 살살 돌려가며 열심히 땀흘리며 다림질을 한다. 퇴근 후 5장 혹은 10장씩 일주일 동안 할 때도 있고 어떤 해는 주말 이틀을 꼬박 보낼 때도 있었다. 1년에 72시간의 Volunteer Hour를 채우기 위해 학교에 필요한 일들에 봉사해야하는데 매일 출근하는 워킹맘인 나로선 이벤트 도우미나 성당 봉사, 도서관 정리, 운동장 수퍼바이저 등 학교내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하지 못하니 1년에 한번 졸업.. 2021. 6. 13.
백신 맞던 날 망설이고 고심하다 얼떨결에 예약해 놓았던 백신 접종의 날이 밝았다. 아주 드문 경우지만 아스트라제네카 접종 후 혈전으로 인한 사망 사례들을 보며 약간의 두려움과 아직 남은 불신으로 최대한 접종을 안 받으려 했지만 지금 받아야 화이자를 맞을 수 있다는 주변의 권유 그리고 접종률 70퍼센트를 넘는 BC주의 상황을 반영하듯 회사 내 접종률도 80퍼센트를 웃도는 분위기에서 더이상 버티기도 그렇고 무엇보다 아들 연령인 12세 이상 청소년들의 접종이 시작되었으니 아직 방학이 멀리 있는 아들의 안전을 위해서도 결심을 해야했다. 남들 다 맞을 때 까지 기다리겠다던 남편도 나의 예약에 끌려가듯 마음을 먹고 그렇게 셋이서 오후 1시 예약 장소로 향했다. 6월 초 이른 여름날의 햇살은 눈이 부셨고 적당히 기분좋게 더웠다. .. 2021. 6. 4.
엄마 어린 시절, 난 엄마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정말 평범하지 않은 엄마에 대한 첫 문장일 듯하지만 그냥 난 그랬다. 엄마가 안아준 기억이나 뭔가를 먹여준 기억, 씻겨준 기억조차 없으며 당연히 내가 지금 딸에게 하듯 예뻐 죽겠다는 포옹과 뽀뽀 세례 한번 받아본 기억이 없다. 엄마는 언제나 화려한 옷차림에 완벽한 화장을 하고 있었으며 항상 바빴다. 엄마는 나의 초등학교 시절 진한 향수 냄새를 풍기며 학교에 등장하곤 하는 육성회장이었으며 내가 맘에 들어하지 않는 내 짝을 바꾸기 위해 시골에서 서울 사립학교로 갓 부임한 순진한 담임 선생에게 돈봉투를 건네 모든 학생들의 자리를 바꾸도록 만든 엽기적인 행위도 서슴지 않았던 그런 정말 드라마에나 나올법한 엄마였다. 그런 일들이 거듭되자 모범생이었던 난 엇나가기 시작.. 2021. 6.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