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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vo My life in 밴쿠버72

소녀시절의 나를 그리며 방금 난 그저 글을 쓰고 있었을 뿐이었다. 요즘 날 사로잡은 새로운 화장품에 대해 뭐 다른 카테고리를 써보고 싶기도 해서 아주 단순하고 명쾌하게 그냥 그런 글을 담백하게 써내려가고 있을 뿐이었다. 물론 나의 감성 행복 부스터인 맥주 한잔과 함께였다. 그런데 음악듣기 선택을 잘못한 거였다. 80, 90 발라드를 선택했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여행스케치의 '별이 진다네'가 흘러나왔다. 아주 오래 전, 어린 소녀시절 화실 선생님과의 추억을 떠올리며 결혼과 이직으로 떠나간 선생님을 슬프게 기억하며 밤늦도록 이 노래를 들으며 몽글몽글 우울했던 감정이 노랫속의 슬픈 풀벌레 소리와 함께 고스란히 다시 전해젔다. 갑자기 울컥 목이 메어와 가슴이 멍해졌다. 머릿속이 아닌 가슴이 멍청하게 아려왔다. 그 시절의 난 참 지금처.. 2022. 1. 8.
지금 내게 필요한 건 난 지금 구불 구불 긴 시골길을 들어와 아름다운 광야에 자리잡은 Swanessete Golf Course의 레스토랑에 앉아있다. 곧 눈이 올 것 같은 하늘과 기분좋게 쌀쌀한 날씨 아이들은 추운 손을 호호 불며 핸드 워머를 주머니에 넣고 골프 카트를 밀며 씩씩하게 라운딩을 나갔고 난 호기롭게 랩탑을 펼치고 일요일 오후를 만끽하기 위한 나의 친구 길고 예쁜 잔에 거품 적당히 담은 사뽀로 한잔을 옆에 두었다. 그런데 인터넷 연결이 자꾸 끊어진다. 옳지 내겐 Hot spot 이 있지. 그런데 맙소사 전화기 배터리가 3퍼센트 남아있네. Youtube 에서 내가 좋아하는 재즈를 틀었다. 그리고 일기장을 열었다. 한산하고 평화로운 레스토랑 입구가 갑자기 시끌벅적 한국 아줌마들 한 무리가 들이닥친다. 불길한 예감은 대.. 2021. 12. 6.
[Short Story #1] 그녀는 내게 즐기라고 말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금요일 오후 나는 불현듯 3주째 차 문옆에 넣어둔 채 전해주지 못한 작은 선물이 생각났다. 점심시간에 간단히 먹을 김밥을 주문해 놓고 차에 들러 작은 Saje 백에 담아놓은 아이크림과 우산을 집어들고, 그녀에게 향했다. 회사 앞 작은 산책로를 따라 약 1분을 걸으면 그녀의 작은 Printing Shop이 나온다. 내가 힘들거나 지칠 때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터덜터덜 찾아갈 때면 언제나 별 유난스런 환영인사 없이 담담하게 웃는 얼굴로 따뜻하고 달콤한 커피를 내주는 그녀가 있다. H는 나보다 여섯살 많은 그러나 내 나이로 보이는 단아한 미모와 따스한 성품을 가진 언니다. 그녀를 처음 만난 인연은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회사 실장님과의 만남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굴지의 광고회사에서 탄탄대.. 2021. 10. 24.
나는 어떤 엄마일까 어젯밤은 한주 동안 수고한 내게 주어지는 가장 달콤한 시간 금요일 밤이었다. 시원하게 샤워를 하고 놀 준비를 끝낸 뒤 내려가자 남편도 금요일 밤을 즐길 태세로 골프 채널을 보며 소파에 널브러져 있었다. 영화 볼래? 하기에 난 펜트하우스 볼거니까 골프 재밌게 보라고 말했다. 오케이, 한명 처리. 이제 두명 남았다. 다시 올라갔다. 방학을 즐기느라 아침에 늦잠을 잤던 아이들은 밤 10시가 넘도록 잘 생각이 없어 보였다. 변성기 아들의 저음 말소리가 두런두런 들리는데 아들 방 문이 닫혀 있다. 확 열었다. 일부러 그런 것 같다 왠지 얄미워서... 뭐가 그렇게 재밌니 엄마도 안찾고? 침대에 누워 전화로 친구들과 얘기하며 영화를 보고 있었다. 샤워하라고 잔소리 한번 해주고 10분 경고를 줬다. 딸 방을 들여다보니.. 2021. 7. 18.
한인타운 살인사건을 떠올리며 20여년 전이었을까 빨간 간판의 대형 한국 수퍼마켓이 생겼다는 소식에 멀리 노스밴쿠버에 살고 있던 우리는 신이 나 주말마다 30분 거리 한인타운으로 장을 보러 가곤 했었다. 반가운 한국 과자와 라면 그리고 김치 등을 신나게 사고나면 바로 옆 빵집과 분식점이 같이 있는 작은 식당에 들러 홍합에 국물이 푸짐한 짬뽕 한그릇을 사 먹은 뒤 다음 코스는 비디오 테이프 대여점. 그 시절엔 한국의 드라마와 쇼프로그램을 녹화한 비디오테이프를 대여해 주는 가게가 한인타운과 메트로 타운 등 곳곳에 있었고 유학생 부부였던 우리는 주말이나 친구들이 모였을 때 한국 오락프로그램을 보며 함께 웃고 떠들며 언어의 자유를 만끽하며 머리를 식히곤 했었다. 그 수퍼마켓을 중심으로 한인타운은 점점 활기를 띠었고 위층으로 연결된 길다란 건.. 2021. 6. 17.
워킹맘의 Volunteer Hour 채우기 해마다 5월이 되면 나는 딸의 학교에 가서 새빨갛고 긴 졸업가운 50개를 낑낑 들고 나와 열심히 차 트렁크에 싣는다. 집에 오면 다시 열심히 옷장으로 실어나른 뒤 가지런히 걸었다가 일을 시작한다. 세탁기에 찬물 사용 Gentle Wash를 선택한 뒤 5장씩 10번을 돌려 세탁이 끝나면 한장씩 펼쳐 앞 뒤 소매 살살 돌려가며 열심히 땀흘리며 다림질을 한다. 퇴근 후 5장 혹은 10장씩 일주일 동안 할 때도 있고 어떤 해는 주말 이틀을 꼬박 보낼 때도 있었다. 1년에 72시간의 Volunteer Hour를 채우기 위해 학교에 필요한 일들에 봉사해야하는데 매일 출근하는 워킹맘인 나로선 이벤트 도우미나 성당 봉사, 도서관 정리, 운동장 수퍼바이저 등 학교내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하지 못하니 1년에 한번 졸업.. 2021. 6.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