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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6

유서 하루의 일과를 무사히 마치고 나서 나에게 주는 휴식의 시간에 난 주로 내 자신에게 달콤한 맥주 한잔을 선물한다. 그리고 거기에 곁들여 남편과 넷플릭스에서 신중하게 고른 영화 한 편을 함께 보거나 아이들이 늦게 잠들어 영화 볼 시간을 놓친 밤엔 혼자 전화기에 이어폰을 꽂고 한국 드라마와 쇼 프로그램을 즐기다 잠이 들곤 한다. 어젯밤 잠들기 싫어 버티는 아이들을 협박해 겨우 재워놓고 남편도 침대에 곱게(?) 뻗어 있는 것을 확인한 후 (아이들도 남편도 잘 때가 젤 예쁘다) 난 또 혼자만의 시간을 즐겼다. 싫어하는 부분은 돌려버리고 관심있는 부분만 골라 볼 수 있는 스트리밍 서비스 고맙다. 나의 선택은 노사연 이무송 부부의 28년 결혼생활을 짚어보며 오랜 갈등 끝 서로 화해하는 모습이었다. 그 중 어떤 장면에.. 2021. 2. 4.
아직도 속이 비었거나 혹은 철이 없거나 지금은 어느덧 낼 모레 50 중반을 바라보는 나이가 된, 가까운 언니가 있었다. 그녀는 항상 명랑 쾌활하며 머리부터 발끝까지 빈틈없이 치장을 하고 다녔기에 항상 화려하고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이었다. 아주 오래 전 그녀의 두 딸이 어릴 때, 그리고 우린 아이가 없을 때 다같이 갔던 한식당에서 불판에 지글지글 고기가 익는 동안 아이들이 식탁에 기어오르려 하는데도 아랑곳 않고 그녀는 열심히 양념갈비가 구워지자마자 본인의 입에 넣느라 바빴다. 그녀의 남편은 아이 하나를 옆에 끼고, 하나는 주저 앉히며 한입이라도 더 먹이느라 바빴다. 우린 그저 그런 장면들과 어수선한 식사자리에 익숙하지 않았기에 머릿속이 하얗게 되더니 멍해져서 밥이 어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겠고 정말로 아기를 갖고 싶지 않다는 우리 생각이 참 올바.. 2020. 12. 29.
'우리 이혼했어요'를 보다가... 원진살이 뭔데? 지금으로부터 어언 20여년 전 만난 지 6개월만에 "같이 캐나다로 떠나겠습니다"했더니 양쪽 집 반응이 처음엔 같았다. 더 심사숙고 하라며, 좀 두고 보며 말리던 두 집안의 답이 같은 듯 달랐다. 지금의 시댁 즉 남친 쪽 집에서는 "도대체, 너 하던 일은 어쩌고 갑자기? 그럼 결혼식은?" 우리 집, 변덕 심한 딸을 잘 아는 우리 아빠 엄마는 "유학 가고 싶은거야, 결혼이 하고 싶은 거야? 계획을 확실히 밝혀라 - 아빠 혹시 모르니 약혼식만 하고 가 - 엄마" ???? 지금의 이 시점에 생각해도 참 현실적으로 앞서갔던 우리 엄마의 답변이었다. 내 마음이 언제 바뀔지 모르니 호적은 건드리지 말아라 이건가. 그렇게 불꽃처럼 유별난 연애로 위태롭게 보였던 우리 약혼에 결혼까지 일사천리로 해치우고 날아온 이곳에서 .. 2020. 12. 27.
'한번도 화 내지 않기' 도전 #1일 어릴 때 꽤나 까탈스런 성격이긴 했지만 지금까지 친구, 대인관계도 대체로 무난했고 사회생활도 오래 하고 있는 걸 보면 특별히 못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현재 가끔 맘에 들지 않는 면이 보일 때 밉긴 하지만 살면서 티격태격 부딪히기도 하지만 그래도 마음 맞고 듬직한 남편이 있고 내 맘대로 되지 않아 속상할 때가 가끔 있긴 하지만 그래도 말 잘듣고 건강한 눈에 넣어도 안아플 아들 딸이 곁에 있다. 그런데 호르몬에 이상이 온걸까 잠자고 있던 못된 성격이 "이제 본색을 드러내라"하며 도발하는 것일까 나도 모르는 스트레스가 마음 깊은 곳에 쌓여 있다가 의외의 순간 건드려지면 필요 이상의 화로 표출되는 것일까 요즘 자꾸 나의 가장 소중한 사람들에게 상처 주는 일을 만든다. 남편이 아무렇지 않게 한 말에 방어적으.. 2020. 12. 11.
슬픈 맥주 비가 오는 날이면 우린 Westwood Plateau 골프 코스 안에 있는 Screen Golf, 혹은 Simulation Room이라 일컫는 방을 빌려 그 안에서 두시간 혹은 세시간씩 아이들과 아빠의 골프 대항전을 구경하며 맛있는 음식 서비스를 즐기며 행복한 주말을 보내곤 했었다. 오늘은 남편의 생일이었다. 지난 주 바로 그 옆 레스토랑에서 저녁 먹으며 얘기를 나눴었다. 우리 생일파티 저기서 할까? 애들도 좋아하는데 오랜만에. 그래 그래. 근데 요즘 가격을 너무 올렸더라 얄밉게... 그래도 생일인데, 한번 놀자. 어젯밤 딸은 아빠 생일에 선물할 동영상을 완성시켰고 아들은 정성껏 그린 그림에 멋진 필기체로 카드도 만들어 놓았다. 난 점심시간을 이용해 우리 모두가 좋아하는 Anna's Cake 까지 휙 날.. 2020. 12. 2.
사랑의 유효기간은 얼마나 될까 오늘은 일요일 와~ 금요일이다 하며 신나했던 주말 저녁의 설레임이 엊그제 같은데 (엊그제 맞네 근데) 어느새 주말의 끝, 또 새로운 한주를 맞기 위해 빨래도 정리해서 넣어놓고 아이들에게 잔소리도 해가며 분주한 저녁시간. 20년지기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다. 정말 오랜만에 만나기로 한 게 이번 주인데 딸 축구팀 가족중 한명이 확진 받아서 자가 격리중. 쌓아놓은 수다가 폭발할 지경이라 반가운 마음에 허겁지겁 서로 말폭탄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서로의 아이들 남편 강아지들 안부까지 챙기다 문득 딸과의 소중한 대화에 대해 얘기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까, 정말 신기하다. 너무 기특하고 예쁘다. 서로 얘기하다가 내가 나도 모르게 말했다. "내게 만약 다음 생이 있다면, 다시 태어난다면 또 내 남편과 결혼하겠어.".. 2020. 11.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