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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맘의 Volunteer Hour 채우기 해마다 5월이 되면 나는 딸의 학교에 가서 새빨갛고 긴 졸업가운 50개를 낑낑 들고 나와 열심히 차 트렁크에 싣는다. 집에 오면 다시 열심히 옷장으로 실어나른 뒤 가지런히 걸었다가 일을 시작한다. 세탁기에 찬물 사용 Gentle Wash를 선택한 뒤 5장씩 10번을 돌려 세탁이 끝나면 한장씩 펼쳐 앞 뒤 소매 살살 돌려가며 열심히 땀흘리며 다림질을 한다. 퇴근 후 5장 혹은 10장씩 일주일 동안 할 때도 있고 어떤 해는 주말 이틀을 꼬박 보낼 때도 있었다. 1년에 72시간의 Volunteer Hour를 채우기 위해 학교에 필요한 일들에 봉사해야하는데 매일 출근하는 워킹맘인 나로선 이벤트 도우미나 성당 봉사, 도서관 정리, 운동장 수퍼바이저 등 학교내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하지 못하니 1년에 한번 졸업.. 2021. 6. 12.
백신 맞던 날 망설이고 고심하다 얼떨결에 예약해 놓았던 백신 접종의 날이 밝았다. 아주 드문 경우지만 아스트라제네카 접종 후 혈전으로 인한 사망 사례들을 보며 약간의 두려움과 아직 남은 불신으로 최대한 접종을 안 받으려 했지만 지금 받아야 화이자를 맞을 수 있다는 주변의 권유 그리고 접종률 70퍼센트를 넘는 BC주의 상황을 반영하듯 회사 내 접종률도 80퍼센트를 웃도는 분위기에서 더이상 버티기도 그렇고 무엇보다 아들 연령인 12세 이상 청소년들의 접종이 시작되었으니 아직 방학이 멀리 있는 아들의 안전을 위해서도 결심을 해야했다. 남들 다 맞을 때 까지 기다리겠다던 남편도 나의 예약에 끌려가듯 마음을 먹고 그렇게 셋이서 오후 1시 예약 장소로 향했다. 6월 초 이른 여름날의 햇살은 눈이 부셨고 적당히 기분좋게 더웠다. .. 2021. 6. 3.
엄마 어린 시절, 난 엄마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정말 평범하지 않은 엄마에 대한 첫 문장일 듯하지만 그냥 난 그랬다. 엄마가 안아준 기억이나 뭔가를 먹여준 기억, 씻겨준 기억조차 없으며 당연히 내가 지금 딸에게 하듯 예뻐 죽겠다는 포옹과 뽀뽀 세례 한번 받아본 기억이 없다. 엄마는 언제나 화려한 옷차림에 완벽한 화장을 하고 있었으며 항상 바빴다. 엄마는 나의 초등학교 시절 진한 향수 냄새를 풍기며 학교에 등장하곤 하는 육성회장이었으며 내가 맘에 들어하지 않는 내 짝을 바꾸기 위해 시골에서 서울 사립학교로 갓 부임한 순진한 담임 선생에게 돈봉투를 건네 모든 학생들의 자리를 바꾸도록 만든 엽기적인 행위도 서슴지 않았던 그런 정말 드라마에나 나올법한 엄마였다. 그런 일들이 거듭되자 모범생이었던 난 엇나가기 시작.. 2021. 6. 1.
감사할 것인가 불평할 것인가 아침에 눈을 떠 시계를 보니 아직 7시 43분 일요일 아침이니 한시간 더 자야겠다 생각하는 순간 정말 행복했다. 그리고 곧 내일은 월요일이니 이미 정신없는 아침을 보낼 시간이네 에휴 주말은 왜이리 빨리 가는거야. 하는 생각과 함께 그냥 오늘 아낌없이 즐기자 하며 다시 눈을 감았는데 아래층에서 발소리, 냉장고 닫는 소리가 생생히 들려왔다. 주말 아침 잠깐의 여유가 이토록 소중한 워킹맘인 나 직장이 있음에 감사할 것인가 매일 출근 준비를 해야 하는 삶에 불평한 것인가 주말 아침에도 늦잠 자길 싫어하는 남편을 둔 나 덕분에 루퍼스 새벽 산책도 쓰레기 분리수거 걱정도 없음에 감사할 것인가 왠지 나만 게으른 듯한 자발적 반성에 이르게 하는 그의 부지런함을 불평할 것인가 아들 방에 가보니 곤히 잠에 빠져 있다. 길.. 2021. 5. 30.
아들, 내 아들 봄바람이 아직 차갑지만 햇살은 따사로운 평화로운 토요일 오후 Junior Golf Tournament가 열리는 Morgan Creek에 도착했다. 경험삼아 도전해보기로 했던 아이들의 대회 시즌이 막 시작되어 이제 세번째 대회. 아직은 조금씩 실력이 늘어가는 과정에 있어 그런지 평소 느긋하다못해 때론 답답하기까지 한 아들의 얼굴엔 왠일로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열 네살이므로 캐디도 부모도 따라갈 수 없으며 그룹 플레이어의 스코어까지 서로 기록하며 긴장감 속에 18홀을 완주해야 하는 먼 길이다. 출발 시간이 되었고 헤어져야 하는 입구에 섰다. 난 아들의 목에 매달리듯 빅 허그를 한 뒤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괜찮아, 잘 할거야..." 그리고 떠나보냈다. 고작 다섯 시간의 헤어짐을 위한 작별 인사가 다섯 .. 2021. 4. 14.
그래도 꿋꿋하게 3월 29일 BC 보건당국의 락다운 발표로 밴쿠버의 모든 식당들이 다시 실내 테이블을 치워야했다. 코로나19 3차 확산으로 확진자가 연일 1000명 이상을 기록하는 상황에서 부활절 연휴를 앞두고 사적 모임 제재를 완화할 수도 있다던 호언 장담은 섣불렀던가. 부랴부랴 내놓은 대책은 다시 셧다운 그리고 백신에 희망을 걸자... 이제 겨우 활기를 찾아가던 식당들은 다시 테이프를 두르거나 치워버린 테이블로 썰렁한 어둠 속에서 테이크 아웃 주문만을 받고 있었다. 점심 메뉴를 고민하다 후배와 수다를 떨며 찾아간 곳은 북창동 순두부 우린 거기서 사이좋게 매운맛 섞어 순두부와 고기 콤보를 픽업했다. 북적이던 실내는 어두컴컴했고 내일 봐 하며 우린 헤어졌다. 후배는 오후 재택 근무라 집으로 난 사내 근무라 다시 사무실로.. 2021. 4.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