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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리는 아침, 너의 뒷모습은 토요일 아침 평화롭게 눈을 떠 창밖을 보니 눈이 부셨다. 지난 몇주간 내린 폭설이 좀 잦아드나 싶었는데 어젯밤부터 또다시 내려 소복히 쌓인 온통 하얀 눈밭. 아 어쩌지, 대회 투어로 바쁜 코치가 이제 돌아와 정말 오랜만에 레슨을 잡았는데 취소해야 하나. 그러나 일단 가보자, 길을 나섰다. 하이웨이는 다행히 눈이 많이 녹아 있었다. 그 먼 길을 헤치고 조심조심 한시간 운전 끝에 우린 도착하고 말았다. 입김이 호오호오 나올 정도로 추운 골프 코스는 온통 하얗게 변해 클로징이었고 주차장에 차는 단 세대 뿐 시골 펍처럼 정겨웠던 레스토랑도 불이 꺼져 있었다. 하긴 이런 날 누가 올까. 레슨 한시간 전에 도착했지만 웜업을 위해 차에서 내렸다. 꽁꽁 얼어붙을 손이 안쓰러워 핫팩을 부랴부랴 꺼내 흔들어 주머니에 넣어.. 2022. 1. 9.
소녀시절의 나를 그리며 방금 난 그저 글을 쓰고 있었을 뿐이었다. 요즘 날 사로잡은 새로운 화장품에 대해 뭐 다른 카테고리를 써보고 싶기도 해서 아주 단순하고 명쾌하게 그냥 그런 글을 담백하게 써내려가고 있을 뿐이었다. 물론 나의 감성 행복 부스터인 맥주 한잔과 함께였다. 그런데 음악듣기 선택을 잘못한 거였다. 80, 90 발라드를 선택했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여행스케치의 '별이 진다네'가 흘러나왔다. 아주 오래 전, 어린 소녀시절 화실 선생님과의 추억을 떠올리며 결혼과 이직으로 떠나간 선생님을 슬프게 기억하며 밤늦도록 이 노래를 들으며 몽글몽글 우울했던 감정이 노랫속의 슬픈 풀벌레 소리와 함께 고스란히 다시 전해젔다. 갑자기 울컥 목이 메어와 가슴이 멍해졌다. 머릿속이 아닌 가슴이 멍청하게 아려왔다. 그 시절의 난 참 지금처.. 2022. 1. 8.
지금 내게 필요한 건 난 지금 구불 구불 긴 시골길을 들어와 아름다운 광야에 자리잡은 Swanessete Golf Course의 레스토랑에 앉아있다. 곧 눈이 올 것 같은 하늘과 기분좋게 쌀쌀한 날씨 아이들은 추운 손을 호호 불며 핸드 워머를 주머니에 넣고 골프 카트를 밀며 씩씩하게 라운딩을 나갔고 난 호기롭게 랩탑을 펼치고 일요일 오후를 만끽하기 위한 나의 친구 길고 예쁜 잔에 거품 적당히 담은 사뽀로 한잔을 옆에 두었다. 그런데 인터넷 연결이 자꾸 끊어진다. 옳지 내겐 Hot spot 이 있지. 그런데 맙소사 전화기 배터리가 3퍼센트 남아있네. Youtube 에서 내가 좋아하는 재즈를 틀었다. 그리고 일기장을 열었다. 한산하고 평화로운 레스토랑 입구가 갑자기 시끌벅적 한국 아줌마들 한 무리가 들이닥친다. 불길한 예감은 대.. 2021. 12. 6.
[Short Story #1] 그녀는 내게 즐기라고 말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금요일 오후 나는 불현듯 3주째 차 문옆에 넣어둔 채 전해주지 못한 작은 선물이 생각났다. 점심시간에 간단히 먹을 김밥을 주문해 놓고 차에 들러 작은 Saje 백에 담아놓은 아이크림과 우산을 집어들고, 그녀에게 향했다. 회사 앞 작은 산책로를 따라 약 1분을 걸으면 그녀의 작은 Printing Shop이 나온다. 내가 힘들거나 지칠 때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터덜터덜 찾아갈 때면 언제나 별 유난스런 환영인사 없이 담담하게 웃는 얼굴로 따뜻하고 달콤한 커피를 내주는 그녀가 있다. H는 나보다 여섯살 많은 그러나 내 나이로 보이는 단아한 미모와 따스한 성품을 가진 언니다. 그녀를 처음 만난 인연은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회사 실장님과의 만남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굴지의 광고회사에서 탄탄대.. 2021. 10. 24.
포기하지 않는 나를 응원하며 돌이켜보면 살아오면서 많은 선택의 순간과 마주했었다. 내 뜻대로 되지 않아 좌절로 돌아온 결과물 그리고 나의 의지와 관계 없이 겪어야 했던 크고 작은 고난들 노력해도 이루지 못했던 그러나 그 노력이 충분했었는지 반성조차 할 줄 몰랐던 시절의 슬픔들 무모했으나 자신있었던 충동적이며 감정적이었던 선택의 순간들 그 시간들을 달려 이 자리에 와 있는 나 자신을 돌아본다. 이젠 더이상 내가 결정하는 모든 것들이 비단 내 삶의 방향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나만큼이나, 아니 더 끔찍하게도 중요한 내 아이들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라면 나의 결정은 더이상 섣부른 객기와 어줍잖은 용기 혹은 허황된 욕심만으로 나아갈 수 없는 크나큰 갈림길이라 할 수 있겠다. 내 바람 내 욕심 그리고 내가 세운 목표는 내가 노력해서 이루.. 2021. 10. 17.
발을 뺄 것인가 계속 갈 것인가 내 나이 마흔에 늦둥이를 얻었다. 이미 서른 다섯의 나이에 첫 아들을 가졌었고 그 아들 하나만으로 넘치게 감사하고 과분하게 행복해 하나만 온 정성을 다해 왕자처럼 키우겠다고 장담하다가 꼴 좋게 아니 운수 좋게도 생각지도 않은 둘째가 덜컥 생겨버렸다. 아, 이제 겨우 아들을 Pre School 보내고 직장에 복귀했는데 맙소사 . 감사해야 할 일인데 정말 죄스럽게도 일단 당황스러웠다. 정말 죄스럽게도 당황을 넘어 고민하는 내게 남편이 말했다. 훗날 우리가 없을 때를 생각해 봐. 둘이 이 캐나다 땅에서 서로 의지할 수 있을거야 우리 잘 키울 수 있어 그 말에 속았다는 생각이 이후 때때로 들었지만 암튼 그렇게 나의 딸이 태어났고 난 딸이라 걱정이 백만 배가 되었다. 그냥 나같이 속 썪이는 딸이 되지 않기를 바라.. 2021. 8.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