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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vo My life in 밴쿠버

비오는 가을밤 Grouse Mountain의 추억을 떠올리다

by cheersj 2020. 11. 5.

2020년이 황망하게, 정신없이 지나간다 싶더니 이제 두달도 채 남지 않았다.

11월의 쌀쌀한 밤,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비오는 밴쿠버 - 레인쿠버'에 접어들었나보다.

 

Happy New Year~ 호기롭게 외치며 폭죽 아래 환호했던 새해 첫날

우린 이런 2020년을 상상이나 했을까.

2월에 들리기 시작한 드라마같은 뉴스는 3월부터 현실이 되어 여름에 끝나려나 가을에 나아지려나 하다가

이제 2차 확산세가 맹렬하게 전 세계를 뒤덮고 있다.

'총 균 쇠'를 쓴 다이아몬드의 말이었던가,

"이제 코로나 이후의 시대는 그저 지금까지처럼 시대의 한 변화로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가 살의를 느낄 때 참아야 하는 것처럼, 마스크를 벗고 싶어도 참고 살아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아, 난 넷플릭스 명작 '킹덤'의 팬으로서 좀비같은 바이러스는 드라마나 영화에서만 존재한다고 믿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어이없이 떠나가고 있는 2020년을 돌아보며 문득 작년 크리스마스에 찍었던 평화로운 사진들을 들춰본다.

 

 

아이들과 즐겨찾는 겨울의 아지트, Grouse Mountain. 

수십명이 붙어서서 다같이 즐겁게 경치를 감상하며 오르내렸던 그 Gondola.

밀폐된 공간이 두려워 2월의 소식을 듣고 난 이후 우린 시즌 패스를 한번도 사용하지 못했다. 

그렇게 봄을 맞았고, 이번 겨울 패스를 다시 사지도 않았다. 아무래도 가고 싶지 않기에. 

그렇게 가깝고도 먼 곳이 되어버린 우리의 추억의 장소를 추억한다.

12월 25일의 해는 저렇게 예뻤고 하얀눈 위를 걷는 것도, 정답게 줄을 서는 슬로프도 즐거웠다.

추운 발코니에서 설경을 바라보며, 꽁꽁 언 손을 호호 불며 마시던 차디 찬 맥주의 맛은 또 어떻고....

이젠 나 없이 씩씩하게 타는 딸래미를 아빠와 오빠와 한꺼번에 저 높은 곳에 올려보내며

한숨 돌리던 꿀맛같은 잠깐의 작별도 정말 달콤했지...

 

우리 아들이 아직 5학년이던 몇년 전 그때의 일화가 떠올라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아빠 없이 셋이 갔던 그때, 어린 딸래미를 데리고 가장 쉬운 Bunny Hill에 있느라 아들을 혼자 올려보낸 뒤

만나기로 한 시간과 장소에 아들이 나타나지 않자 난 점점 공포에 빠져 들었다.

Report를 해 패트롤을 보냈는데 20분이 지나도 못 찾고 돌아왔다.

해는 뉘엿뉘엿 지기 시작했고, 난 저 추운 산 속에 아들이 넘어져 혼자 울고 있는 상상을 했다.

공포에 질려 하염없이 울고 선 날 바라보던 다섯살 딸이 말했다.

"엄마, 오빠 죽었어?"

아, 딸이 이렇게 내손을 꼭 잡고 있지만 않았다면

난 당장 산속으로 뛰어내려가 아들을 찾아 헤매다 영영 죽어버리고 싶을 지경이었다. 

도저히 못 견디고 두번째 패트롤을 또 보냈다. 

그리고 또 하염없이 시간이 흐른 뒤 패트롤이 부웅 하고 나타나 아들을 찾았으니 걱정 말라고 말했다. 

슬로프에 내려 걸어오는 낯익은 걸음걸이가 보였다.

"아, 정말 찾았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아들이 다가와 말했다.

"엄마, 나 엄마가 없길래 한번 더 타고 온 건데... 왜 패트롤 두개나 보냈어..."

난 미친듯이 허그를 하며 말했다. "없어진 줄 알았어, 엉엉..."

아들이 날 안아주며 약간은 당황하고 창피한 듯 말했다.

"엄마..... 울지마.... 엄만 날 '너무' Love해...."

 

아직도 그 얘길 한다. 엄만 날 너무 Love해... 너무한다 이거지... 

그런데 난 그때 처음 느꼈다.

아이가 시야에 안보일 때의 몇초간 가슴 철렁함 그보다 몇천만배 큰 공포... 

아이를 잃어버린 부모들의 심정을 그냥 아주 잠깐 상상하며 너무나도 가슴 아팠다.

죽을 수도 살 수도 없을 그런 마음...

갑자기 실종 아동들의 실태 다큐멘터리가 생각나고 기도가 하고 싶어진다....

 

추억을 되새기다 너무 멀리 나갔나 보다...

다시 예쁜 경치와 석양을 구경하며 평화로운 맘으로 돌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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