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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vo My life in 밴쿠버

슬픈 맥주

by cheersj 2020. 12. 2.

비가 오는 날이면 우린

Westwood Plateau 골프 코스 안에 있는

Screen Golf, 혹은 Simulation Room이라 일컫는 방을 빌려

그 안에서 두시간 혹은 세시간씩

아이들과 아빠의 골프 대항전을 구경하며

맛있는 음식 서비스를 즐기며

행복한 주말을 보내곤 했었다.

 

오늘은 남편의 생일이었다.

 

지난 주 바로 그 옆 레스토랑에서 저녁 먹으며 얘기를 나눴었다.

우리 생일파티 저기서 할까? 애들도 좋아하는데 오랜만에. 

그래 그래. 근데 요즘 가격을 너무 올렸더라 얄밉게... 그래도 생일인데, 한번 놀자.

 

어젯밤 딸은 아빠 생일에 선물할 동영상을 완성시켰고

아들은 정성껏 그린 그림에 멋진 필기체로 카드도 만들어 놓았다.

난 점심시간을 이용해 우리 모두가 좋아하는 Anna's Cake 까지 휙 날아가서

초콜릿 케잌과 아기자기한 초까지 다 준비해 놓았다.

 

딸의 레슨이 8시였고

7시부터 문 닫는 9시까지, 두시간 예약했으니

딸은 한시간동안 놀며 파티하고 레슨에 들어가기로 즐겁게 동의했었다.

 

그런데

룰루랄라 들어간 Sim 1 룸이 뭔가 이상했다. 어둡다? 뭔가 좀 부족한데?

아니나 다를까 샷을 해도 찍혀 나오질 않고 이상했다. 

조금 비대해 보이는 그러나 친절한 백인 아가씨가 와서 열심히 도우려 했으나 

해결이 되지 않았고 다시 Sim 2 룸으로 옮겨갔으나 마찬가지. 

퇴근한 매니저를 불렀고 그러는 사이 30분이 흘렀다.

매니저가 오더니 허무하게도 쉽게 해결이 되었고 

미안하다며 Range card에 Ball을 10 unit이나 넣어주었다. 

그런데 

이제 30분밖에 남지 않은 딸이 점점 슬퍼하더니 급기야 울기 시작했다.

아직 저녁도 나오지 않았고 파티는 언제 하나 난 샷도 한번 못 쳐 봤는데

엄마 money pay 했는데 우린 아무래도 waste money 한 것 같다 하며. 

괜찮다고, 지금 파티 할 수 있다고, 

30분 늦은 것만큼 보상 받았으니 걱정말라고 달랬지만

이미 분위기는 다운을 향해 가고 있었다.

 

진짜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그 표현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매번 재밌게 잘 놀던 곳에서 이게 뭐람. 

이 와중에 딸이 불평한다고 맘에 안 든다 해놓고 

이 기계가 사실은 한국 것에 비해 너무 후졌다는 둥 

오늘따라 잘 안 맞는다는 둥

지가 더 불평을 늘어놓는 남편이 쥐어박고 싶도록 미웠지만 

그래도 딸을 달래서 파스타도 먹이고 초콜릿 케잌도 한입 먹여

코치 선생님에게 잘 들여보내고 돌아왔다.

 

그리고 뭔 말을 하는데 내가 불량스럽게 픽 웃었더니

바로 삐졌다. 

그래서 애가 좀 징징거릴 수도 있지

금방 달래서 보냈는데 다시 기분 좋게 해야지

뭘 계속 툴툴거리냐고 

성격 좀 고치라고 했더니

더 삐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들이랑 사진 찍고 웃으며 놀았더니

완전 삐졌다. 

 

나를 꽤나 기다리던 IPA가 눈에 들어왔다.

한입 마셨다.

이 와중에 너무 맛있다.

그런데 슬펐다.

 

왜 가장 행복하고 싶은 날엔

마음 먹은대로 계획한 대로 행복할 수 없는 일들이 생길까.

정말 아무 것도 아닌 일에

어이없이 기분이 상하고 

별 일 없는데 망한 기분이 드는 이런 날

그런데도 맛잇는 맥주가

너무 슬펐다. 

 

집에 오자마자

남편이 열심히 아이들 골프백이랑 짐 내리고 있는데

평소같으면 기다렸다 같이 나올 것을

Rufus를 데리고 휙 혼자 나가버렸다.

따라오기만 해봐라, 혼줄을 내 줄테니

 

했는데 안 따라오네.

올라오니 소파에 누워 골프 채널 보고 있다. 

아, 진짜 또 맥주 땡긴다.

 

오늘은

잊고 싶은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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