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수업에 늦지 않기 위해
정문이 보이는 언덕길을 숨이 차도록 뛰어내려가며 시계를 보던 나
그리도 또 일주일에 한번 채플 시간에 늦지 않게 들어가기 위해
아직 열려있는 그러나 곧 닫힐 지도 모를 대강당의 문을 애절하게 바라보며
그 수없이 많은 계단을 발 저리도록 뛰어 오르던 나
공강 시간엔 학교 앞 Old and New Cafe에 앉아
친구들과 수다를 꽃피우며 커피 리필을 즐기고 화장을 고치던 나
세상 가장 큰 고민이
아빠가 정해놓은 밤 10시 통금시간이었던 나
주말이면 좋아하는 나이트클럽이 문 여는 시각 6시 땡 할 때 들어가
밤 9시 45분까지 분 초를 아끼며 아낌없이 놀던 나
뒤늦게 붐이 일었던 락카페에서 서태지와 현진영의 노래에 행복했던 나
앞으로 혼자 헤쳐나가야 할 세상살이가 얼마나 어려울 지도 모르고
마냥 철없고 철없던 나.
나는 X세대다.
세월은 이미 눈 깜짝할 새 흘러 20년이 훌쩍 넘어버렸지만
그래도 난
아직 그 때의 감성과 추억을 되새길 때 행복하고 설렌다.
평소에도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한국 방송을 보고 들으며 잠들기를 즐겨하는 내게
어젯밤 '사랑의 콜센터'는 내개 너무나도 큰 선물을 주었다.
미스터 트롯을 한번도 빼놓지 않고 시청했던 나 그리고 우리 딸,
캐나다 태생인지라 어쩔 수 없는 일명 바나나, 어눌한 한국말을 구사할지언정
아빠 엄마의 나라를 좋아하며 반은 한국인이라는 자긍심을 가진 내 딸은
한국 드라마 한국 가요 그리고 트로트에 관심을 갖게 되며 미스터 트롯에도 같이 빠져 들었다.
물론 아들의 말대로 오히려 학교 친구들, 한국과 관련 없는 친구들조차도
K pop을 즐겨하며 같이 듣자고 할 뿐 아니라 드라마에 대해 묻기도 한다지만
우리 9살 딸은 엄마 덕에 같이 열심히 시청하다 보니 미스터 트롯의 정동원 팬이 되어 버렸다.
지난 여름 주니어 골프 마지막 대회 때
1등 하면 사랑의 콜센터에 전화해 주기로 약속까지 받아낼 정도였다.
몇만 통을 해야 이루어지고, 시차도 반대이니 자칫하면 밤새도록 기다려야 할 지도 모르는데
난 그래 좋아, 해 버렸고
다행히, 아니 불행히도 딸은 1등은 못하고 3등을 했기에 겨우 그 기약없는 고행을 피해 갈 수 있었다.
어젯밤은 90년대 특집이었다.
딱, 그 시대 나를 설레게 했던 그들을 만날 수 있었다.
현진영, 김조한, 이지훈 등등...
개인적으로 팬이이었던 건 아니지만
전주만으로도 그냥 우리 시대의 공감 구역 안으로 순식간에 들어간 느낌에
난 소름이 끼치도록 행복하게 그리운 그 시절을 추억했다.
아직도 건재하고 에너지 넘치는 그들의 모습에
뿌듯하고 대견하기까지 했다.
그래, 우린 아직 젊어.
나도 아직 에너지가 넘친다고.
비록 그 시절이 꿈결처럼 느껴지지만
지금도 그 꿈 못지않게 다른 행복을 일구어 가며 살고 있기에
지나간 추억으로 잠시 설레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완전히 행복한 지금이 아닐까.
엊그제 산 Total Gym이 저~기서 날 손짓하며 부르네.
영차, 예전같지 않은 몸이지만 일으켜 보자.
뭐라도 해보자.
춤 대신 운동으로
젊은 날의 나를 조금이라도
돌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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