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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vo My life in 밴쿠버

아프다던 딸, 지금 뭐 하니

by cheersj 2020. 12. 8.

 

월요일 아침

오전 회의가 길어지고 있었다. 

출근하자마자 컴퓨터가 업데이트를 한답시고 오랫동안 안 켜지는 바람에

매월 첫째 주 월요일 부서별로 제출해야 하는 보고서를

다다다다..... 벼락치기로 작성했고

회의를 시작해보니 연말 연시 대비해야 할 것들이 많아 머리가 복잡했다.

그럭저럭 가닥이 잡혔고, 웃으며 기분좋게 마무리 하려는 순간 

친한 후배가 전화기를 갖고 들어왔다.

전화가 계속 울려서... 보니 딸 학교란다!

 

허걱, 학교에서 전화가 온다는 건

십중 팔구 좋지 않은 소식이다. 내 경험에 의하면...

네 아이가 오늘 공부를 너무 잘했다든가 

오늘따라 정말 착하다든가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낸다든가

뭐 그런 소식을 갑자기 전화로 전해주진 않기에. 

 

놀다가 구름다리에서 떨어져 크게 다쳐 피가 철철 난다든가

속이 안 좋아 토하고 나서 양호실에 누워있거나

영문 모르게 울기 시작했는데 기분이 좋지 않아 집에 가는 게 나을 것 같다거나

뭐 그런 것들 중 하나이다. 

다 경험해 본 사례들인데 뭐 하나 덜 걱정되는 것 없이 마음이 급해지는 경우들이다. 

 

자, 이번엔,

열이 나고 머리가 아픈 데다가 토하려고 해서 화장실에 갔단다.,.. 맙소사

지금 코로나19로 재채기도 함부로 못하는 팬데믹 상황이라고... 딸아.... 

전화를 끊자마자 보고서를 던지듯 제출하며 반차를 선언하고 뛰쳐나갔다.

밖은 비까지 퍼붓고 있었다. 

 

차, 차, 학교, 학교, 운전 조심, 운전 조심....

드디어 도착했다. 초인종을 눌렀다. 사무실 선생님, Mrs Bird가 뛰어나와 말했다.

Oh dear, 아빠가 데려갔어 벌써.... 

우씨, 간발의 차이로 아빠가 빨랐다.

그럼 통화할 떄 나한테 말 좀 해주지. 전화를 안 받길래 아빠한테 얘기했다고.

전화를 보니 문자가 벌써 와 있네....

 

딸을 보러 아빠 사무실로 뛰어가니 너무나 평화롭게 책을 읽고 있었다.

휴, 안도의 한숨을 쉬며 안아주는데 이마가 따끈했다.

괜찮아 우리딸?

으~ 흠? 

특유의 yes란 표현을 쿨하게 하며 안긴다. 

 

그래, 다행이다. 반차도 냈겠다 엄마랑 놀자 까짓거....

뭐 먹고 싶냐고 물으니

역시나 피자와 치킨 윙... 

친구의 캐나다인 남편이 해장으로 피자를 먹는다는 말에 기겁을 했던 게 생각났다. 

너흰 어떻게 이래. 아플 땐 뜨끈한 국물이나 죽이 생각나야 하는 거 아닌가. 

하지만

예전에 아플 때 싫어하는 죽을 억지로 먹였다가 다 토했던 생각이 나서

그냥 너 먹고 싶은 거 다 먹어라 하고 Panago Pizza에 들러 픽업을 했다. 

 

집에 오자마자

어린이용 Echinacea를 한개 먹였더니 억지로 몇 번 씹다 삼켰다. 

 

그리고는 

허니 갈릭 치킨 윙 두 박스를 얌냠냠 다 먹어치웠다.

치즈 피자 한조각에 오렌지 주스 2컵을 원샷하고. Popsicle에 포도에 lay's 과자까지.

 

코로나19에 감염되면 미각과 후각을 상실한다기에

좋아하는 음식을 잘 먹으면 안심이다 하며 지켜보다가

웃었다.

너무 잘 먹네. 미각 후각 이상 없음. 

 

그리곤 

잠옷 입혀 침대에 눕혔더니 제일 먼저 

아이패드 calling 앱에 접속해

아예 기침까지 해서 학교에 못온 친한 친구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했다.

나도 일찍 왔어, 열이 좀 나서.. 

꺅 꺅 하는 웃음 소리를 들으며 방을 나왔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나도 잠시 소파에 몸을 눕혔다. 

 

따뜻하고 배부르게 해서 눕혀 놓긴 했는데

나랑 안 놀고 친구랑 노네.

 

엄마 엄마 불러대며 

엄마 손 꼭 붙잡고 아장아장 걷던 때를 잊은 거니.

Day Care에 내려놓고 돌아설 때

너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선생님과 작전을 짤 만큼 

엄마에게 안겨 떨어지기 싫어하던 네 모습이

아직도 눈에 밣히고 선한데,

아직도 문득문득 미안한데... 

 

On line 수업으로 바쁜 아들은

점심시간에 집에 갑자기 온 엄마와 동생을 보고 당황해

괜찮냐고 물었을 뿐 

그리고 Pizza를 보고 잠시 좋아했을 뿐

다시 들어가 수업을 듣고 있다.

 

반차 내고 왔는데

엄마랑 아무도 안 놀아주네.

 

괜히 마루 바닥을 Swiffer로 한번 슥삭슥삭 밀고 다니고 

식기세척기도 돌리고

주섬주섬 일하는 척 했는데

회사 있을 시간에 집에 있는 건 좋은데

뭔가 허전하네.

 

딸 웃음 소리가 여기까지 내려오네.

저런

아프다던 딸 맞니.

지금 즐기고 있는 거니. 

그래 그렇다면

네 덕에 엄마도 Rufus랑 오붓한 오후를 즐기겠다.

우리 Rufus랑 산책이나 갔다 와야지.

 

나 지금

애들 이만큼 다 키웠다고 흐믓해야 하는건가

날 안 찾는다고 서운해야 하는 건가

남편밖에 없네 하고 달려가야 하는 건가.

 

다 아니다

그냥 이것도 즐기면 된다.

맘껏.  

나밖에 모르는

우리 예쁜 Rufus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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