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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vo My life in 밴쿠버

일요일 저녁의 하소연

by cheersj 2021. 1. 18.

 

나는 어릴 때부터

자존심이 강하고 욕심도 많았다. 

친구를 배려하는 마음을 발휘했던 순간도 조금 기억이 나긴 하지만

그보다는 잘못된 일, 예를 들면

일기장 검사 받을 때

날짜만 바꿔 도장을 받는 친구에 관한 제보를 받았던 초등 2학년 때

가차없이 선생님께 가서 보고한 뒤 응징을 확인하면서 정의감에 젖어 웃었고

시험 끝날 때 선생님께서 "자 이제 걷어도 될까? 다 못한 사람 손들어~" 하면

자신있게 손을 든 뒤

"선생님, 다 했는데 다시 검토 중이니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했던 

좀 재수없는 아이였던 것 같다. 

 

유복한 집에 태어난 장녀로서 기대를 한몸에 받았고 

다행히도 영리하고 모범생이었던 나

내게 주어진 모든 것들이 그저 당연한 것이라고 느꼈던

가끔은 친구들에게 마음을 베풀면서 잠시의 흐믓함을 알긴 했지만

내가 가진 것들이 정말 특별하고 감사하기에

더 소중히 생각해야 하고

많이 드러내진 말아야 하는 것임을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던

그래서 아무것도 몰랐던

그냥 아무 생각없던 어린 시절의 나였다.

 

그렇게 철모로던, Spoil 된 어린이는 소녀가 되었고

전혀 아무런 준비 없이, 어려움도 고난도 이겨내 본 적 없는

내공 없는 스무살 숙녀가 되었다. 

 

그러나 부모가 만들어준 유복함과 따스한 울타리는 영원하지 않았다.

어느 한순간 그 울타리와 둥지는 깨어지고 날아갔으며

내공없고 생각없고 철없는 나는

세상에 혼자 내던져졌다. 

 

그 스물한살의 나

그리고 20여년이 지나 지금의 내가 되기까지

아무것도 몰랐던 어린시절에 겪어야 했을

모든 것들을 한꺼번에 겪으며 어설프게 배우고

아프고 또 아프며 성장했다.

 

지금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사랑하는 남편과 두 아이들

쉽지 않은 시작과

하나씩 극복하며 이겨내 온 크고 작은 시련들 

조금씩 내 힘으로 우리의 힘으로 일구어 온 지금의 삶

내가 모르는 사이 내게 주어졌던 그 어떤 황금 융탄자보다도 더 귀한

내가 한땀한땀 일구어 짜 놓은 알록달록 거친 이 카펫이 

얼마나 값지고 소중한지 너무나도 절실히 알게 된 지금

감사한 마음과 함께

가족들에 대한 사랑이 매일 샘 솟는다.

 

그런데

다 좋은데

 

요즘은 정말 단 하루만 혼자 있고 싶다.

아침에 눈을 뜨면 아이들을 깨워 학교갈 준비를 시켜놓고

부엌으로 뛰어 내려가 바로

간단하지만 딸아이 도시락을 싸야하며 (카페테리아에서 사먹는 고등학교는 정말 고마워)

남편이 개를 데리고 나가기 전엔 

그 와중에 남편의 수다에 답을 해줘야 한다. 

아이들이 내려오면 

간단하지만 아침 시리얼이나 토스트를 챙겨주고

그 와중에 출근준비, 그냥 로션 바르고 옷 잆는 게 다 이지만

후다닥 후다닥 계단을 몇번이나 뛰어 오르내리며

그 아침 시간을 보낸다.

 

출근해 책상 앞에 앉으면

휴 하고 한숨 돌리며

회의 준비 메일 체크 답변 다운받기 기획하기 등등

퇴근까지 보고와 회의 실무 등으로 바쁘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을 아빠 사무실 가서 반갑게 맞이하고

집에 돌아와 저녁을 준비해 먹이고

큰애에겐 각종 학교 생활 확인과 잔소리

둘째에겐 직접 숙제 체크와 씻기기 등등

하루종일 심심했을 루퍼스와 놀아주고 밥주고

나까지 씻기고 나면 비로소

자유의 시간... 

나 혼자 생각하고 즐기고 한숨쉬고 

아무도 뭘 묻지 않으며

책을 읽으며 메모를 할 수 있고

음악을 들으며 눈물 흘릴 수 있고

드라마를 보며 격분할 수도 있는 

그런 온전한  

나만의 시간

너무 즐기다 약간의 미안함까지 느껴질 때가 있다...

만약 이런 시간이 하루종일 있다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월요일 아침은 한주의 시작인 만큼

어깨도 무겁고 마음도 무겁다. 

그런 내일 아침을 코앞에 둔 일요일 저녁

하소연이 절로 나오며

나를 위로하기 위한 맥주가 한잔 두잔 막 땡긴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평일 나의 쉴틈 없는 일정은

나를 꽉 채워주는 버팀목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가끔은 나를 놔줬으면 하는 답답한 사각의 프레임이기도 하다. 

그 옛날 나의 정체성이 융통성 없는 Square 였다면

이게 그 연속인가 아니면 보상(?)인가 싶은

지키며 희열을 느끼지만 때론 벗어나고 싶은 

정말 아이러닉한 이 뿌듯함과 답답함의 중간 그 어디쯤

내 감정은 그 사이를 방황하고 있다.

 

가족들아

사랑해 

그런데 

미안해 

너무 혼자 있는 시간을 열망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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