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밤공기가 쌀쌀해지고 있다.
2020년을 맞이하는 카운트다운의 함성과 알록달록 폭죽이 아직도 선명한데
어느덧 8월이 다 가고 있다.
그날의 'Happy New Year' 환호성과 감격에 찬 포옹을 함께 나누었던 우리들은
이렇게 어이없이 찾아올 재앙을 알기나 했을까.
이곳 밴쿠버에서는 3월 18일 비상 사태 선포를 한 다음에야 조금씩 그 심각성을 피부로 느끼기 시작했고
마스크를 쓴 사람과 안 쓴 사람, 백인과 유색인종 특히 그 중에서도 아시아인들,
서로를 경계와 원망의 눈초리로 조금씩 피해 다니는 그림들이 연출되고 있었다.
밴쿠버엔 좀처럼 없었던 인종 혐오 범죄도 심심찮게 일어났다.
아시안들은 버스 안에서 혹은 길 가다가 이유없이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그 와중에 중국인 부부는 마스크를 사재기해 폭리를 취하며 길거리 판매하다 적발되어
사회적인 망신거리가 되었다. 미디어에 소개된 부부의 모습은 딱 한국인 같았다. 하필.
아 정말 부끄러움은 왜 우리의 몫인가.
난 중국인이 아니에요, 써 붙이고 다니고 싶을만큼 뭔지 모르게 억울했다.
확진자 수는 늘어갔고 주정부의 대책에 조금 사태가 진정되는 듯 했다.
역시 BC주는 안전해, 하던 중 아이들은 방학을 맞아 한시름 놓았고
온라인 수업으로 봄을 어이없이 보낸 아이들에게 두달 보태진 긴 여름방학은
온라인 수업을 위해 갖춰주었던 그 장비로 게임과 틱톡 앱 놀이에 빠져들기에 아주 좋은
그야말로 그들의 호시절이었다.
이제 비즈니스 활동재개로 확산세는 날이갈수록 커지는 시점에서
아이들은 개학을 일주일 앞두고 있다.
오 마이 갓.
High School 아들은 반반 수업이란다. 온라인과 대면 수업.
그런데 Elementary 딸은 매일 등교하게 된다, 그것도 마스크 착용은 의무가 아닌 본인 의사대로...
보내야 해 말아야 해.
내겐 선택이 없다.재택 근무가 끝나 매일 출근해야 하는 우리 부부에게 아이들의 학교는
Child care centre 이자 양질의 교육까지 책임져 주는 고마운 안식처이기 때문,
게다가 더 이상 하루에 일곱번씩 전화하는 Creepy Mom 노릇은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매일 반복되는 통화 내용은 이렇다.
"잘 잤어? 아침 먹었니? 동생 잘 챙겨라"
"아직도 게임 하니? 점심 뭐 먹을래?"
"엄마가 해 놓은 거 먹었니? 라면 먹지 마"
"Rufus 산책 시켰니? 놀아줘라, 너네만 놀지 말고"
"게임 그만 해라 몇시부터 공부할거니"
"동생도 뭐 먹였니? 자 공부 시작 안하면 엄마 반차 쓰고 달려갈거다"
"점심 잘 먹었니? 공부 한시간 했니?"
"엄마 이제 갈건데 집 좀 치워놓고 있어"
하루종일 전화 받다 지친 아들이 퇴근길에 보내는 문자는
"Can you bring food'
으이구, 하면서 또 전화한다
"뭐 먹고 싶어?"
그래도 다같이 모인 저녁은
설렁탕이든 Subway든 다 맛있고 반갑다.
둘이서 착하게 안전하게 있어주는 것만 해도 고맙고 안쓰럽지.
내일은 전화 좀 덜 해야겠다.
아, 이렇게 2020년 8월의 마지막 밤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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