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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vo My life in 밴쿠버

딸, 네가 태어났던 날 ... 아직도 미안해

by cheersj 2020. 10. 19.

딸, 언제 어디서나 당당하고 정직하게, 너의 예쁜 삶을 그려나가길 바란다. 

 

내겐 눈에 넣으면 많이 아플 것 같은, 종잡을 수 없이 유별난 아니 특별한 딸이 있다. 

나이 마흔에 당황스럽게 찾아온, 처음부터 미안한 마음으로 기다렸던 안쓰러운 아이.

태교는 커녕 각오없이 찾아온 극심한 입덧과 두통에 불평 불만만 늘어놓고

눈에 넣어 다니고 싶을 정도로 애지중지했던 네살 오빠만 졸졸 따라다녔던 나쁜 엄마. 

임산부는 과일도 예쁜 것만 먹어야 한다는데 그런 건 아랑곳 않고

딸기도 예쁜 것은 골라서 오빠 다 주고 씻다가 미운 것만 집어먹고 

입덧에 괴로워하다 한순간 미안한 마음에 한번 울어준 것 말고는 아무것도 안해준

정말 나쁜 엄마가 나였다. 

 

임신 7개월에 딸인 걸 알았다. 웬 딸... 그랬다...

법적으로 성별을 알아내기 위해 초음파 동영상 촬영이 허가되는 시점을 기다려

사설 병원에서 초조하게 기다렸다가 꼬물꼬물 움직임을 보며 눈물 흘렸던 첫째 때와 달리

그냥 때가 되니 병원에서 정기검진 받을 때 의사가 윙크를 하며 말해줘서 '그냥' 알았다. 

내게 딸이라니... 어색했다. 왜 그랬을까.

첫째가 아들이고 둘째가 딸이니, 막 좋아할 줄 알고 힌트를 줬던 캐나다인 여의사가

조금 멋쩍어했었던가.

 

이틀동안 진통을 하고 고생 끝에 만난 아들과 달리 

딸은 진통 시작 네시간 만에, 차안에서부터 참고 참다 병원 도착하자마자

의사 선생님 오기도 전에 쑥 나와버렸다.

와, 난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의 순간, 그때도 시계를 보고 있었다.

아빠가 중요한 세미나가 있어 아침 6시에 떠나야 하는데

새벽 4시 25분에 얼른 나와줘서 다행이다. 이런 생각을... 

 

휴. 안도는 잠시.

아기를 씻기던 간호사들이 조심스럽게 이게 뭐지 그런 내용의 대화를 나눴고

선생님을 기다릴 때 까지 긴장감이 흘렀다.

가슴에 안았을 때도 미안한 마음부터 들었다. 이상하게 기쁨보다 가슴이 아팠다.

 

그런데 아기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을 때 뭔가 이상했고 의사가 와서 설명했다.

아기 엉덩이 윗쪽 꼬리뼈에 정말 '꼬리'가 달려 있었다. 

의사는 단순히 피부 조직이 튀어 나온 것일 수 있으니 잘라내면 된다고 안심시켜 주었다.

그래, 좀 걱정은 되는데 내게 무슨 일이 있겠어 하고 생각했다.

'아기에게'가 아니라 ''내게'였다. 

 

아침이 지나고 오후가 될 때까지 서너명의 의사들이 들어와 아이와 나를 체크했다.

그리고 연민이 담긴 눈빛으로 앞으로 어떤 검사를 하게 될지 설명했으며 

망연자실한 내게 친절한 격려도 잊지 않았다.

이곳은 BC주 전역에서 가장 유능한 소아과 의사들이 모인 Children's Hospital 이니

나의 Women's hosptial 에서의 출산이 정말 행운이라고, 가장 저명한 의사가 아기를 고쳐줄거라고.

 

어둑해진 병실에 홀로 누워 잠든 아기를 바라봤다. 정신 차려야 한다....

정밀 검사실로 아기를 데리고 이동하는 길,

걷기 힘든 몸이었지만 추스르기 힘든 정신보다는 덜 엉망이었다.

 

매달려 울고싶을 정도로 인자하지만 날카롭게 생긴 슈타인 박사님이 

우리 딸의 꼬리뼈 사진을 보여주며 정말 어려운 의학 용어를 늘어놓았다.

하늘로 단어들이 날아다녔고 멍해진 머릿속은 하얗게 흐려져갔다.

척추뼈가 연결되어 있다고. 수술해야 하는데 너무 어려 기다려야 한다고.

수술이 잘못될 경우 걷지 못할 수도, 키가 더이상 자라지 않을 수도 있다고...

그러나, 잘 될 수도 있으니 너무 걱정은 하지 말라고.

아,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구나. 

눈물은 나지 않았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 느껴보는 칠흙같은 어두움이었다. 

 

저녁에 돌아온 남편은 아기를 꼬옥 안은 채 모든 얘기를 차분히 들었다.

그리고 아기위 귀에 대고 말했다.

"괜찮아, 아빠가 지켜줄게, 무슨 일이 있어도..."

 

내 남편은 때로 철없는 아이같고 충동적이지만

적어도 나보단 천만배 훌륭한 사람이었다.

난 장애아를 키우게 될 지도 모를 '나'만 생각했었다.

그것만으로도 청천벽력 같았다.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장애를 안고 살아가게 될지도 모를 딸에겐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었다.

그런데 어떤 일이 생겨도 지켜주겠다는 말을 처음 들은 거였다. 아빠에게서.

 

난 지금도 그 순간이 죄스럽고 딸에게 미안하다. 

엄마가 세상에서 가장 베스트 엄마라는 우리 딸에게 난 아직도 미안하다. 

 

난 요즘 죽음에 관해 많이 생각한다.

나의 마지막 모습, 그리고 내 뒤에 남겨질 나의 흔적들.

훗날, 내 딸이 이 일기를 보게 된다면 너무 슬퍼하지 않기를 바란다.

엄마는 그날의 내가 죄스럽고 미안하지만

그냥 그건 엄마가 모자라고 부족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널 만난 이후로 한번도 널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단다.

 

그래도 미안해. 

아직도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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