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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vo My life in 밴쿠버

새로운 시작

by cheersj 2020. 7. 21.

무작정

 

누구나 그렇듯, 내게도

미래라는 시간을 어떻게 바꾸어놓을지 짐작조차 못한 채

어떤 큰 결정을 해야 했던

혹은

무심코 선택했던 길들이 그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무작정 날 이끌었던

그런 순간들이 있었다.

 

유년시절, 나는 어떤 아이였던가. 

어둑해진 골목길에서 놀다 문득 가슴이 서늘해져 들어와서는

괜시리 유리탁자 위를 뛰어보고 싶어 펄쩍, 뛰었다.

깨진 원형 유리가 조각이 되어 발목으로 발등으로 파고들었다.

순식간에 번지는 빨간 점들의 문양을 보며 당황했으나 울지 않았다. 

의연하려 애를 썼었던 기억.

담담한 사람이고 싶었나.

 

여고시절

친구 생일이라는 식상하지만 안전한 연기로 주말 외출을 허락받고

난 그저 하지 말아야 할 무언가를 해낸다는 묘한 쾌감으로

별 관심도 없던 아이와 '공포의 외인 구단'을 봤다.

그 사실을 알게된 세살 위 오빠가

어떻게 그런 거짓말을 할 수 있냐며 9개월 동안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억울했지만 따지지 않았다. 

그냥 사람들은 많이, 좀 다르구나 생각했다. 

내겐 작은 재미, 누군가에겐 큰 일탈. 

 

나의 20대는

얼굴을 때리고 할퀴는 소낙비를 마주하고 내내 달리듯

때로는 통렬하고 뜨겁고 시원하게 

그러나 대부분은 아주 많이 아프고 차갑게

눈 깜짝할 사이에 내게 왔다 사라졌다.

쉼없는 방황을 필연적인 선택이라 스스로 위로했으며,

모든 게 나의 결정이고 나의 의지대로 흘러가고 있는 거라 믿었다.

그래서 대체로 난

엉망이었지만

항상 

당당했다. 

 

30대의 나는 

이제부터는

따뜻하고 바른 사람이고 싶었다.

그리고 해가 갈수록

그렇게

더 성숙하고 따뜻하고 넓은 사람이 되는 건줄 알았다.

 

그러나

아무런 준비도 없이, 자격도 없는 내가

40대라는 시간의 문턱에 던져졌을 때 

문득 깨달았다.

 

이제 더이상

무작정 

그냥

무심코

한번 

뭐든 해볼 

그럴 시간은 없다는 것을.

 

그럼에도

정말 마지막으로

무작정

 

이 블로그를 시작하는 이유는

내게 남겨진 하루 하루를 

돌아보고 담아두고 토닥이며

그 어린 시절의 나처럼

의연하고 당당하게

내일의 시간을 마주하기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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