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얼핏 잠이 들었나 했는데
웅얼웅얼
저음의 말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눈을 떠 전화기를 켜니 새벽 3시 11분
이상하다.
말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따라가 보니
물론
그 저음의 목소리를 낼 사람은
딸이 아닌 열네살 변성기 아들인 것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역시나 따라가보니
아들 방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나도 모르게
몰래는 아니지만
너무 놀라지는 않도록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뭐 하니? 지금 몇 시인 줄 알아?"
침대에 누워 이어폰을 꽂고 신나게 통화중이던 우리 아들이 말했다.
"응, 이제 Work 다 했어, 잘게"
난 더이상 유치한 엄마가 되고 싶지 않아 쿨한 척 문을 닫고 나오며 말했다.
"응 그래 얼른 자~"
그리고 오늘 아침부터 하루종일 생각했다.
그리고 문득문득 마음이 어두워졌다.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 새벽 세시까지 통화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내가 분명
새벽 1시에 보러 갔을 때 열심히 컴퓨터를 이용해 그룹 포르젝트를 하고 있었는데.
점심 시간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고
남편과 나는 오랜만에 추억의 칼국수 집에서 점싱을 먹기로 해 만났다.
칼국수와 돌솥비빔밥을 나눠 먹으며 남편에게 얘기했다.
"아무래도 수상해. 맨날 David이래"
남편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응, 분명 David은 아닐거야, 남자끼리 새벽 세시까지 수다 떨 일은 없거든"
아, 염장을 지른다는 표현 써 본 적은 없지만 백퍼 공감했다.
"그럼 여자일까? 나 그럼 너무 슬픈데"
했더니
자랑스럽게 말한다.
"그 나이면 그럴 수도 있지. 우리 엄만 별로 슬퍼하진 않았는데"
아 정말 도움 안되고
진심 미웠다
오늘 학교를 마치고 온 아들에게 물었다.
"어제 누구랑 그렇게 전화를 늦게까지 했니?"
"음... David도 있었고, Josh."
"엄마가 모르는 친구인데"
"아, 엄마 그건 Group Project를 끝내며 그냥 얘기 좀 한거야."
그리고 한 1분 침묵이 흘렀다.
그 시간은 내가 꾹꾹 다음의 질문을 참아낸 시간이다.
"남자야 여자야?"
묻는 내가 조금 부끄러웠다.
그런데 알아야 된다는 사명감도 들었기에 그냥 스타일 구기는 거 알지만 물었다.
"엄마... 왜 그래..."
아들이 웃었다. 수상했다.
"네가 전화하는 친구들 엄마가 다 아는데, 알아야지... 그래서 묻는거야" 했더니
딸이 옆에서 듣다 말했다.
"엄마, Kate 알아? 모르지... Gr.7 친구야,
우리 학년이 아니니까 엄마 모르지... 엄마가 어떻게 다 알겠어 친구들을"
무심헌 척 하고 편을 들어주는 걸까.
아, 의심스럽다. 밝혀내고 싶다.
그런데
알고 싶기도 하고
알고 싶지 않기도 하다.
내 마음은 뭘까.
이 마음을 털어놓으니 다 듣고 난 솔직한 후배의 그 말대로
난 '올가미' 인가.
그 영화에 나왔던 배우 최지우 시어머니의 심정을 전혀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오늘밤 아들이 또 전화로 수다를 떤다면
난 또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이 많아진다.
난 벌써 그 누군가를 경계하고 있는 듯 하다.
자기 아들은 내 말만 듣는다며 날 칭찬하는 우리 시어머님은
아마
해탈하신 분인 듯 하다.
난 어른 여자가 되려면
아직 한참 멀었다.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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