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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맘의 좌충우돌 성장기

삶에도 Mulligan Chance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by cheersj 2020. 8. 11.

가을날처럼 파란 하늘, 뜨거운 햇살이 기분좋은 오후

아이들의 주말 라운딩에 따라 나섰다.

 

한주 동안의 무거웠던 짐들을 잠시 마음 한구석에 치워버리고

이 하루만큼은 

구름과 나무, 그린과 Creek이 만들어내는

한폭의 서정적 추상화 속으로 빠져본다. 

 

손에 든 차가운 Steam works 한캔은 

4시간의 여정을 달콤하게 채워줄 친구

나무 사이를 평화롭게 거니는 Deer 가족은

끝없이 젖어드는 상념에서 잠시 깨어나 미소짓게 한다. 

 

 

아들 하나만 낳아 왕자처럼 키우겠다고 입바른 소리 했던 30대의 나

거기까진 그냥 내 뜻대로

그런 줄 얼았다. 

 

나이 40에 덜컥 날 찾아온 우리 딸

 

아, 이제 한숨 돌리나보다 했는데

어떻게 복귀한 직장인데

아직 갈 길이 먼데 

이렇게 못나고 모자란 내게 아들 하나도 벅찬데 

 

갖은 이유를 대며 고민하는 내 머릿속과 달리

그런 고민을 하고 있는 내 마음 알아챘을까봐

미안하고 아프고 보고싶어하며 견뎌낸 뒤 만났던 딸

 

그 딸이 어느덧 자라 

그린 위를 콩콩 뛰어다니며

공을 치고 굴리고 춤도 추고 화도 낸다.

 

 

첫번째 홀  두번째 홀  세번째 홀...

마음 먹은 방향으로 치고 그린에 올려 홀에 넣기까지

한타 한타 칠 때마다 바닥을 고르고 자리잡는 작은 그 두발과 앙다문 입이

시 암송에 1등하기 위해 귀를 막고 교실 구석에 박혀 정신없이 외우고 또 외우던

어린시절의 나를 떠올리게 한다. 

 

7번 홀에서 한번 미스샷을 치더니 퍼팅도 계속 실수해 그만 울음이 터지고 말았다.

억울한 그 눈물의 이유는 

시작할때 주기로 했던 Mulligan(최초의 샷이 잘못 되었을 때 벌타없이 주어지는 세컨드 샷) Chance를 썼어야 했는데 

필요할 때 쓰지 못했기 때문에 이번 홀을 다 망쳤다는 것.

 

눈물을 닦아주며 속으로 가만가만 말해본다. 

 

딸아

이제 그만 정신을 차려야 한다.

 

살다 보면 

내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날아가버린 공을 찾아 떠나야 할 때도 있고

때론 그 공이 어이없는 곳에서 발견되거나

아예 사라져 다시 시작해야 할 수도 있어. 

마음도 아픈데 게다가 그 실수의 댓가도 함께 치러야 하지. 

 

그러나 다행인 건

언제나 다시 시작할 마음과 용기만 있다면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는 거야. 

 

자, 다음 홀이 기다리고 있어.

기운 내자. 

 

후유, 그런데 정말 그러네

 

우리 삶에도 Mulligan Chance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난 어느 지점에서 그 찬스를 사용했어야 할까. 

 

어느덧 지는 해가 조금씩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Steam Works도 추워서 그만 마시련다.

새들이 거리두기를 하듯 줄지어 어디론가 가고 있다. 

 

우리도 집에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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