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
평화롭게 눈을 떠 창밖을 보니
눈이 부셨다.
지난 몇주간 내린 폭설이 좀 잦아드나 싶었는데
어젯밤부터 또다시 내려 소복히 쌓인 온통 하얀 눈밭.
아 어쩌지, 대회 투어로 바쁜 코치가 이제 돌아와
정말 오랜만에 레슨을 잡았는데 취소해야 하나.
그러나 일단 가보자, 길을 나섰다.
하이웨이는 다행히 눈이 많이 녹아 있었다.
그 먼 길을 헤치고
조심조심 한시간 운전 끝에
우린 도착하고 말았다.
입김이 호오호오 나올 정도로 추운 골프 코스는
온통 하얗게 변해 클로징이었고
주차장에 차는 단 세대 뿐
시골 펍처럼 정겨웠던 레스토랑도 불이 꺼져 있었다.
하긴 이런 날 누가 올까.
레슨 한시간 전에 도착했지만 웜업을 위해 차에서 내렸다.
꽁꽁 얼어붙을 손이 안쓰러워
핫팩을 부랴부랴 꺼내 흔들어 주머니에 넣어주자
딸은 아이패드로 친구와 먹고싶은 캔디 얘기를 하고 있었다며 해맑게 웃었다.
아무리 다 큰 척 해도 아기는 아기네.
열살이 된 이후 가장 많이 한 말
엄마, 혼자 할 수 있어. 혼자 할거야.
트렁크에서 골프백을 내린 뒤 들고가려 하자
이번에도 말했다.
엄마, 미쉘가 해야쥐.
특유의 어눌한 한국말지만 나름 단호해서 반항할 수 없는 카리스마.
얼른 내려 놓았더니
자기 키만한 가방, 무게는 본인 몸무게보다 더 나갈 듯한데
어깨에 척척 짊어지더니
눈길을 성큼성큼 걸어가기 시작했다.
내 딸
너무 씩씩하네.
잠깐의 뒷모습에
코끝이 찡했다.
하얀 눈이 배경이라 그랬나
그냥 내 딸이 걸어갈 그 길이
아주 멀고 힘든 길인 것을 알기에.
그러나 본인이 들어서길 원했고
아직 멋모르고 저벅저벅 걸어가고 있기에
엄마는 그냥
그 길을 멈추지 않고 갈 수 있도록
옆에서 함께 걸을 뿐
아무것도 해줄 수 없기에
그 뒷모습이
마음 아프도록 예뻤나 보다.
멋진 내 딸
훗날 우리 함께
오늘 이날의 엄마 일기를 보며
함께 웃을 날이 있을거야.
응원한다.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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