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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맘의 좌충우돌 성장기

9살 딸이 외쳤다 "No Pain No Gain"

by cheersj 2021. 1. 17.

 

2021년의 새해가 떠오른 게 바로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1월의 반을 다 보내버렸다.

새해 첫주 날아든 안 좋은 소식과 함께

미뤄왔던 일, 대면하고 싶지 않은 일에 마음의 준비를 해야하는 부담감으로

급우울하고 의기소침해져

거의 매일 일기처럼 마음을 털어놓으며 정리하고

티친들의 글을 보며 즐겁게 위로받았던 이 시간마저 뒤로 외면한 채

또 일주일이 지나버린 것 같다. 

 

하지만 내 감정과는 상관없이

가족들과의 시간만큼은 행복하고 싶었기에

그 순간만큼은 잊을 수 있기에

폭우가 쏟아지는 주말에도

바람이 매섭게 부는 주말에도 

열심히 고생하며 즐기는 골프 라운딩은 쉬지 않았다. 

취미로 시작했지만 제대로 시키고 싶은 마음에 

주니어 대회 시즌을 앞둔 두 아이들을 위해

그리고 아이들이 아니면 절대 네시간 반은 커녕

한시간도 걸을 엄두조차 내지 못할 나의 건강을 위해.

 

오늘은 토요일

어김없이 티타임은 12시 20분, 집 근처 Golden Eagle Golf Course로 향했다.

모처럼 비가 오진 않았지만 날씨는 산밑이라 더욱 쌀쌀하게 느껴졌다.

산허리를 웅장하게 감은 안개, 새들이 떼지어 날아가는 소리,

끝없이 펼쳐진 나무와 하늘의 아름다운 선들...

내 맘은 이미 현실을 떠나 자연의 품에 안겨 치유되고 있었으며

과연, 아름다운 삶이라는 감사의 마음으로 물들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엄마, I have a problem... 푸푸 마려운 것 같아... ㅠㅠ "

?? 이제 네번째 홀을 지났는데 이게 뭔소리??

화장실 가고 싶다는 딸, 아 이런 난감할 때가...

갑자기 꿈에서 확 깨버렸다.

하늘이고 나무고 구름이고 뭐고 예뻐보이지도 않고

새소리도 너무 시끄러웠다. 

어릴 때, 그래도 지금보다 한살더 어릴 때

가벼운 일 정도는 숲속에 가서 급히 해결한 적 있었다. 

그러나 이건 아니다. 그리고 넌 이미 10살이 코앞이야. 

"일단 참아봐, Hold 해야 돼 알았지?"

 

딸은 기특하게도 별탈없이 한홀한홀 열심히 끝냈고

드디어 9홀이 끝나고 잠시 쉴 수 있는 타임이 왔을 무렵

갔다 올 시간이 너무 부족하므로

게다가 급하게 갔다 올 용무가 아니라며 스스로 포기해 버렸다. 

기특한건지 불쌍한건지.

 

오후 4시를 넘기며 해는 벌써 뉘엿뉘엿 지기 시작했고 

날씨는 더욱 추워졌다.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다. 

딸의 손은 차갑게 얼어갔고

내게 기대 어리광을 부리던 9살 딸은 어느덧 눈을 감고 

라운딩이 끝난 뒤 먹으러 갈 좋아하는 레스토랑의 파스타를 머릿속에 그리며

한타 한타 버티며 치고 있었다. 

그리고 말했다. 

"No Pain No Gain!"

그건 작은 외침과도 같았다.

이 라운딩, 18홀을 무사히 다 끝내야 갈 수 있는 화장실

그리고

그래야 기쁘게 먹을 수 있는 Meadow Garden Restaurant의 파스타와 치킨윙

난 너무 안쓰러운 마음에 안아주고 토닥이며 괜찮냐고 물었고

딸은 괜찮다고 계속 그 말을 되뇌었다.

얘 뭐지, 내가 배워야겠다... 

 

그러더니 급기야 말을 바꿨다.

No Pain No Wings

 

그래서 나도 거들었다

No Pain No Beer

 

아들이 도왔다

No Pain No Pasta

 

남편은 멀리서 티샷 준비를 하며

셋이 뭘 하고 노는건지 모른 채 같이 웃었다. 

 

결국 우린 해냈다. 

마지막 홀을 끝내며 우린 같이 Hi Five를 했다.

장하다 내 딸

얼른 가자, 깨끗한 화장실로

맛있는 파스타와 치킨윙과 맥주가 기다리는 레스토랑으로 

달리자~!!  

 

나도 이젠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마주하고 싶지 않은 일

용감하게 씩씩하게 준비하자.

 

끝내면 마음의 평화가 올 것이다.

우리 딸처럼 잘 참고 견뎌낸 뒤

웃으며 끝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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