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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vo My life in 밴쿠버

다시 수험생이 되어버린 너에게

by cheersj 2020. 12. 28.

조금은 유별난 그리고 까칠한 사람에 속하는 내가

오랫동안 동경했었고 존경해 온 분이 있다.

바로 우리 큰 시누이, 그냥 큰언니라 부르지만

암튼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우리 남편이 막내 동생인지라

20여년 전 처음 인사 드릴 때부터

나를 특별히 아껴주시고 예뻐해 주셨던 언니다. 

 

첫인상은 

어릴 때 우리 남편 친구들이 모두다 짝사랑에 빠졌다는 소문만큼이나

너무나도 곱고 단아했으며

오랜 유럽 유학 생활 때문이었을까, 이국적인 고상함에

때로 허당끼 있고 순수한 유머와 웃음까지. 

바로 내가 되고 싶은 사람

'아름다운 지성미를 갖췄는데, 게다가 편안한 사람' 그 자체였다. 

 

급히 수술 받을 일이 있어 오랜만에 혼자 한국을 잠시 방문했을 때

몸이 회복되지 않은 상태로 시어머니 호출에 시댁에 간 나를

지금 이 몸에 편히 쉬어야지, 불러서 뭘 먹이는 게 중요하냐며 시어머님에게 핀잔을 주며

바로 다시 친정으로 데려다 주셨던 언니

지혜로운 딸을 주셔서 감사하다며,

우리 친정 엄마에게 항상 때마다 잊지 않고 진심어린 인사를 건네는 언니

우리 친정 오빠까지 친동생처럼 자랑스러워하고 아껴주고 위해주는 언니

 

그 언니가 늦은 나이에 결혼해 아들을 낳았었다.

독신주의자였던 선남선녀 두분의 만남 결혼 그리고 득남까지

온 집안이 기뻐했었다.

 

세월은 흐르고 흘러 어느덧 

그 아들이 올해 수능을 보게 되었다. 

아주 오래 전 가족 파티에서

와인을 직접 따르겠다고 떼를 쓰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

그렇게 세월이 흘렀나보다. 

 

모든 가족이 12월 3일을 기다리며 기대하며 걱정하고 있었다.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해 항상 주위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던 아이였기에.

 

궁금한 마음에 참다 못해 어머님께 전화를 걸었다.

"어머님, 시험 잘 봤나요? 어떻게 됐어요?"

시어머님이 약간 허탈한 웃음으로 답하셨다.

"에휴, 시험 안 봤단다"

 

이런 일이...

왜요, 도대체? 했더니 자세한 얘기는 만나서 하기로 했단다.

주위의 기대가 너무 부담스럽고 버거웠을까

스스로에게 정한 목표가 너무 힘겨워 포기하고 싶었을까

 

마음이 너무 아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언니의 그 심정이 어땠을까.

소중한 아들이

인생에서 어쩌면 가장 중요할 수도 있는 몇개의 관문 중 하나인 

작은 테스트의 문앞에서

갑작스런 포기를 선언했을 때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던 그 마음.

 

너무 가슴이 아파 잠이 오질 않았다.

내게도, 그와 비교할 수 없이 작은 일이지만 비슷한 경험이 있다.

작년, 아직 완성되지 않은 실력이지만

경험삼아 나가기로 했던 주니어 골프대회를 앞두고 

아들이 3일 남은 시점에서 대회에 나가고 싶지 않다고 선언했었다.

얼마나 열심히 연습시키고 레슨 받고 모두 같이 노력했는데. 

그 때 많은 생각을 했었다.

학교 일도 아니고, 누가 뭐라 하는 것도 아닌데

마음이 그렇게 부담스럽다면 하지 말라고 쿨하게 말해줘야 하나

아니면 이런 부담감과 두려움을 이겨내고

결과에 상관없이 도전해야 한다고 강제로 내보내야 하나

그런데 다행히 아들은

마지막날 마음을 바꿔 그래도 해보겠다고 했고

의외로 나쁘지 않은 성적으로 그 시즌을 마무리했었다.

 

그 백배 천배 만큼은 컸을 갈등과 실망 그 사이에서 

언니가 얼마나 힘드셨을까

그리고 당사자의 좌절감과 허탈감은 또 얼마나 클까.

나보다 훨씬 성숙하고 훌륭하신 부모님을 두었으니 

큰 위로와 더 깊은 생각을 나누고 있겠지만 

그래도

내가 멀리서라도 해줄 수 있는 위로는 없을까.

 

뭔가

좋은 말

지혜로운 가르침

그런 글을 찾아내어 보내주기라도 한다면 도움이 될까.

 

모르겠다. 

열심히 찾아보고 읽었던 책들을 떠올려보지만

잘 모르겠다.

아직도 고민중 

 

혹시라도 이걸 발견하는 블로그 고수님들께서

조언을 주실 수도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기대도 해 본다. 

내일도 찾아보고 고민해야지.

 

꼭 마음의 상처를 다독여줄 수 있는 위로를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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