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퍼스는 산책 후 발을 닦고 간식을 먹은 뒤
거실에 올라와 자기 자리에 일단 앉고 나면
잘 움직이지 않는다.
어제 새로 사준 포근한 갈색 매트를 맘에 들어할까.
올라오자마자 자기 자리로 가더니 매트를 바라본다.
앗 매트가 바뀌었네 하고 1초쯤 생각하는 듯 하더니
방향을 이리 바꿨다가 저리 바꿨다가 한번씩 해본뒤
편안히 자리를 잡았다.
좋아 보인다.
흐믓.
그리고
움직이는 가족들을 고개 쓱 들어 바라보고
아이들이 다가오면 누워서 애교 좀 떨어주더니
그자리에서 꼬박꼬박 졸고 있다.
부엌에 서서 컵 정리를 하고 있는데
저 쪽에서 고개를 빠꼼히 내놓고 날 보다가
눈이 마주쳤다.
뭐 하는지 궁금해?
어릴 때 그렇게 사고를 치더니
이제 어엿한 네살이라 그렇게 점잖게 앉아 있는거야.
5개월 되었을 때
하루는 자고 일어나면 계단 카펫을 야금야금 뜯어놓고
다른 날은 또 나무 계단 귀퉁이를 잘근잘근 씹어놓고
그것도 모자라 소파 한쪽면을 먹어(?) 치우더니
주는 장난감 인형마다 속이 다 튿어져 나오도록 과격하게 놀아재끼던 너
이제 다 컸어?
어제 아침
곧 처음 진입한 두자리 숫자, 10세 생일을 맞이하는 딸이
이제부터 '엄마 없이 혼자 자기'에 도전하겠다고 선언했다.
기특하지만 약간 당황스러워 투정부렸다.
야, 이젠 엄마가 너 없이 못자는데
Notice도 없이 갑자기 이러면 어떻게 하니...
딸이 하이틴 소녀 흉내를 내듯 으쓱 하며 웃었다.
"할 수 없어 엄마, 미안.
난 이제 곧 열살이라고..."
그동안
아기였던, 아니 아직도 아기인 딸을 씻기고
잠들 때까지 토닥토닥 해주거나
좋아하는 드라마나 쇼를 이어폰 한쪽씩 나눠 꽂고 잠시 보며 수다도 떨다가
같이 잠들어버리는 그 시간이
내게 너무 소중하고 달콤한 행복이었다.
그렇게 습관처럼
작은 침대에 함께 잠들며 포근하고 향기로웠다.
중간에 문득 깨어 방에 돌아가려 하다가도
세상 모르고 쌔근쌔근 잠든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꼭 껴안고 구경하다 행복한 한숨을 쉬고는
다시 잠들어버린 세월이 몇년인가.
언젠가부터 문 열어놓고 엄마를 앉혀 놓고는
예쁜 샤워볼에 거품을 내가며 혼자 씻기를 즐기더니
게다가 Bubble bath를 허락받은 날엔
아이패드로 좋아하는 게임쇼를 틀어놓고 시청하며 즐기더니
이젠
잠도 혼자 자 보겠다고 한다.
딸이 정상인 것 같은데
생각으로는 알고 있는데
마음으로는 준비가 안 되어있네.
엄마가 더 커야겠다.
딸아
그리고 루퍼스야
너희들
이제 다 큰거야?
엄만 이대로가 좋은데
큰일이다
엄만
언제 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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