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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진돗개 Rufus 이야기

두 얼굴의 Rufus

by cheersj 2021. 2. 1.

 

우리 루퍼스는 이중 인격견이다. 

 

남편은 매일 아침 루퍼스를 산책 시킨다.

그리고 간혹 불평을 한다. 

루퍼스가 너무 순해서 화가 날 때가 있다고 한다. 

다른 개가 가까이 달려들며 으르렁 거려도

얌전히 있거나 못본 척 지나치기 일쑤라며.

정말 보기 싫은 프렌치 불독 일행이 있는데

매일 아침 7시 반 정도에 같은 장소에서 마주친다고 한다.

그 개의 주인들은 50대의 게이 커플...

누가 봐도 게이 아저씨 분들인 건 자명한 모습이고

다문화 사회 캐나다에서 그런 것쯤은 알아보는 것도, 존중해 주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다. 

그 프렌치 불독은 우리 루퍼스를 아기 떄,

3개월 쯤 되었을 무렵부터 보아왔기에 만만해 보였을 거라며

아마도 루퍼스가 성견이 되면 나아질 거라 생각했는데

이제 덩치가 다 커져 지보다 더 큰데도 으르렁거리고,

루퍼스는 그 옆을 못본척 가만히 지나가니 열 받고 화 난다고 한다. 

그렇다고 그 개가 진짜 공격을 한 것도 아니고

주인들은 저지하려 하는데 소리까지 막을 길은 없고 

거기다 대고 뭐라 할 수도 없으니

정말 답답하다고

우리 루퍼스가 혹시 겁장이인건 아닌지, 하소연을 하곤 한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우리 루퍼스로 말할 것 같으면

으슥한 밤, 잠들기 전 마무리 피피를 어쩌다 혼자 데리고 집 코앞의 산책로 입구에 데리고 나갈 때면

숲속 저 편에서 누가 걸어나오기만 해도

털을 다 곤두세우고 공격 자세를 취하며 낮은 늑대 소리를 낸다. 

거의 누군가 덤비기만 하면 물어 죽이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표명하듯 강력하다. 

그건 곧

경계해야 할 대상이 나타났으므로 난 준비한다, 그렇게 말하듯이 들린다.

내가 "루퍼스 왜그래, 괜찮아..." 해도 낮게 으르렁 대며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아니나 다를까

그 사람이 숲에서 나와 산책로에 모습을 드러내면

어김없이 시커먼 모자티를 눌러 쓰고

왜 이 시간에 저길 산책할까 싶은 이상한 사람도 있고

그냥 선량해 보이는 주민일 경우도 있다.

 

그뿐인가. 

화창한 일요일 아침 내가 혼자 산책을 시킬 때가 있다. 

일요일 한번은 아이들과 내가 해주기로 했지만

아이들이 너무 달콤하게 자고 있을 땐

나도 혼자 조용한 시간을 즐기고 싶기도 한 마음에

루퍼스를 데리고 룰루랄라 산책 트레일에 들어선다.

평화롭게 볼일 보고 풀 뜯고 놀던 루퍼스는

저 멀리서 큰 개가 보이기만 해도

경계 시작! 털은 이미 고습도치처럼 세우기 시작.

비호감(?)으로 보이는 사나운 개가 쳐다보며 지나가기만 해도

늑대처럼 포효하며 날뛰기 시작한다.

그 힘이 너무 세서 

난 거의 Leash를 잡고 끌려가다시피 하며

겨우 진정을 시키곤 한다. 

놓치면 당장 달려들어 한입에 물어버릴 것 같아 진땀을 흘린 적도 있다. 

 

아, 얘가 너무 순해서 고민이라고? 

정말 답답하다.

아무리 말해도 믿지를 않는다.

남의 개를 공격하고 싶어 안달인 급박한 순간에 

영상을 찍어 증거로 남길 수도 없고. 

 

오늘 아침

우리 순하디 순한 루퍼스가 

또 늑대 개가 되었다. 

젊은 백인 부부가 데리고 가던 갈색 강아지가 쳐다보며 다가오자

우리 루퍼스가 또 으르렁 거리며 달려들지 못해 점프를 했다.

내가 먼저 Sorry 하려 했는데 그 여자가 먼저 착하게 Sorry를 했다.

그래서 그냥 웃으며 아침인사로 잘 마무리 하고 지나쳤다. 

하긴 먼저 다가온 건 그 개이긴 하지만 좀 미안했다. 

 

도대체 루퍼스 넌 뭐니.

두얼굴이니. 

 

산책에서 돌아와 남편에게 얘기했더니

막 좋아했다???? 뭐야 얜 또...

아하 나랑 있을 때 얘한테 나쁘게 했던 개 일수도 있지... 하며... 

개 조련 전문가인 강형욱님의 방송으로 공부를 나름 많이 한 남편 말로는

남편과 산책 할 땐

매너를 중시하는 철저한 훈련 덕에 세상 얌전한 루퍼스지만

내가 데리고 나갈 땐

루퍼스 입장에선 지가 나를 데리고 산책 중이므로 나를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거였다.

헐. 그런거였어... 그렇게 누군가 혹은 어떤 개든 가까이 오면 죽일듯이 덤비던 이유가...

고맙다 루퍼스야

그런데 괜찮아.

엄마도 생각보다 무섭다... 

그치만 두얼굴의 네가 무섭게 변할 때

싫지만은 않더라.

누가 나타나도 날 지켜줄 것 같기에... 

 

두얼굴이든 세얼굴이든

다 예쁘다.

너도

형 누나에게 바라듯 

어딜 가든

나쁜 개에겐 강하고 용감하게 대적하고

착한 개에겐 순하고 너그러운 

멋지고 성숙한 개로 잘 자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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