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개월 아기 때 비행기 열시간을 타고 우리 곁에 온 루퍼스
어느덧 네살이 되었네.
언제 이렇게 컸지.
하루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가족들을 반길 때 깡총깡총 애교스러운 모습은 너무나 귀엽고
따뜻한 밤 영화보는 식구들 옆에서 꼬박꼬박 조는 얼굴은 정말 사랑스럽지.
강가에 가서 천방지축 뛰어놀다
아빠의 '기다려' 소리에 군기 바짝 든 모습이 사진에 담겼다.
루퍼스를 바라보면서
아주 오래 전
아픔으로 가슴 한켠에 덮어둔 채 외면하고 싶은 기억이 다시 떠오른다.
맥스.
아기 맥스가 내게 왔을 때 난 고등학생이었고
학교와 학원 생활로 바빠
밤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와 인사를 나누었었다.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는
또 학교와 사교 생활로 바빠
밤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와 인사를 나누었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주말은 가족과 함께'라는 유별난 규칙을 고수하는 아빠 덕에
일요일만은 맥스와 열심히 놀았다.
독일 세퍼트였던 맥스
신이 나서 내게 일어나 안길 땐 키가 나만큼 커
뒤로 넘어지며 깔깔거렸던 기억
학원에서 사온 보름달 빵을 몰래 줄 땐
금지된 달콤한 크림맛에 놀라 내 손까지 다 핥아먹었던 기억
열어놓은 문틈으로 나가 사라진 맥스를 찾느라
좋아하는 교양수업까지 빼먹고 온동네를 헤매 찾은 뒤 기쁘게 안았던 기억
대학 2학년 어느 봄날
나의 소중한 것들을 챙길 새도 없이 도망치듯 떠나야 했던 집
성처럼 날 지켜주던 모든 것들이 무너졌고
나 자신을 추스르기에도 벅찼던 그 때
텅 빈 집에 홀로 남겨진 맥스를
기사아저씨가 개소주집에 넘겨주었다는 얘기를 우연히 듣게 되었던 날
밤이 새도록
내가 집을 떠나야 하는 일을 겪었던 그 날 밤보다
더 가슴을 치며 통곡을 했던 기억
또 눈물이 난다
멈출 수가 없다.
언제쯤 잊을 수 있을까
아니,
잊어도 될까
아니면
잊어야 할까
아
생각 안하려 했는데
왜 또 생각을 꺼냈을까
눈물이 멈추질 않는다.
루퍼스야
우리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자
그리고 이렇게 마음 아픈 일이 없도록
아주 아주 먼 훗날 헤어져야 한다면 작별인사도 행복하게 하자
이번엔
정말 마지막까지 행복하자.
맥스 몫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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