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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vo My life in 밴쿠버

아들의 여자친구 그리고 나

by cheersj 2021. 2. 16.

 

열네살 우리 아들은

아기때부터 지금까지 나의 온 마음을 빼앗은 존재다.

내게 '올가미'라는 별명을 안겨줄 정도로

아들을 보는 눈엔 하트와 꿀이 뚝뚝 떨어지고

좀 큰 뒤에는 동생 씻기느라 바쁜 엄마 때문에

언제부턴가 혼자 샤워하게 했던 게 문득 문득 미안해

지금도 등 밀어줄게 하며 따라다닌다.

 

언젠가 그 떄 얘기를 한 적 있다.

아들아, 엄마가 옛날에 네가 씻겨 달라고 했는데

엄마 지금 동생 씻기느라 바쁘니까 혼자 씻을래?

했더니 그날따라 기분이 그랬는지 네가

오늘은 엄마가 씻겨줘 하고 고집을 피우더라.

그런데 엄만 네가 원래 착한 앤데 왜 저러나 싶어

아 그냥 씻고 와 엄마 지금 바빠.

그랬다. 

그런데 이제 와 생각해봤더니

그 이후로 네가 혼자 씻는 건가? 그런 생각에 마음이 아파.

너무 미안해... 이렇게 말하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글썽했다- 갱년기인가... 

 

아들이 너무 재밌어 하며 막 웃었다.

정말? 난 기억 하나도 안나...

근데 엄마 왜 울려고 해? 그러지 마...

엄마 왜 이렇게 착해? 난 기억 안난다구...

알았어 엄마 오늘 등 닦아줘, 그럼 안 슬퍼? 그리고 안아줬다.

이제 나보다 머리 하나만큼 더 커져버린 아들.

내가 안아주는 건지 아들이 안아주는 건지 모르지만

누가 봤으면 정말 웃긴다 했을 것 같다...

오래 전 일을 생각해 혼자 눈물을 글썽이고 아들은 킥킥 웃고... 

 

얼마 전 

코로나로 인해 아들은 온라인 수업을 받던 날

딸을 태우고 가던 아침 등교길에 살살 캐묻기 시작했다.

 

오빠가 학교에서 좀... 누가 좋아하고 그러니?

사실은 전해들은 게 좀 있어서 탐문을 살살 하기 위함이었다.

딸은 머뭇거리다 조금씩 털어놓기 시작했다.

딸은 아직 열살이지만 또래보다 조숙하고

티격태격해도 서로 비밀스럽게 의논을 할 때나 혼이 날때나 항상 같은 편 

둘이 나 몰래 더 많은 걸 공유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엄마에겐 비밀이 없기로 약속해왔고

'엄마와 딸의 Girl Talk'이라는 평소 쌓아놓은 심리적 결속력 덕에

오빠의 비밀을 조심스럽게 하나씩 풀어내던 딸의 성숙한 듯 귀여운 모습에

웃음이 좀 나기도 했으나 

내가 받은 충격과 배신감을 덮기엔 역부족이었다. 

 

내 아들에게

여자가 있다!

8학년 입학하자마자 내 아들을 좋아한다고 공표하고

초등학교시절 부터 같이 올라간 아들의 친구들에게 접근해

적극적으로 애정 표현(?)을 지속하던 중

복도에 지나가던 아들을 갑자기 확 끌어당겨 같이 사진을 찍어

SNS에 자기 남자친구라 올렸다는 것.

순둥이 우리 아들은 

걔가 그렇게 싫지만은 않았는지

그냥 그렇게 여자친구가 되어버렸다는 얘기.

당돌한 아이네.

그러면서 뭔가 응답{?}을 했기에 그랬겠지.

하는 생각에

갑자기 하늘이 무너져 내렸다.

내 아들이 이제 아기가 아니구나.

더이상 엄마에게 다 얘기하지 않는구나.

 

출근해서 후배에게 충격받은 얘기를 했더니

어릴 떄 이민 와 여기서 학창시절을 보낸 그 후배가 얘기했다.

아유 참... 오히려 늦은 거라구요... 

애들 초등학교 때부터 사귀어요... 고등학생인데 뭐 어때요...

아니다.... 안된다.... 

내 아들은 아직 안 된다~!!!

진심 반 장난 반 하소연을 해댔다.

그렇게 정신 나간 하루를 보내며 어지러웠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얼마 전 한가로운 저녁, 아들 방에 가보니

8학년 앨범을 보며 동생과 함께 누가 사진 잘 나왔는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난 슬쩍 끼어들어 모르는 척 다른 아이들 연애사를 시작으로 대화에 동참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같이 다닌 절친들을 다 알기에 

얘가 누구를 좀 좋아했었는데 얘가 싫다고 했다는 둥 

재밌게 듣다가 살살 유도했더니

순진한 아들이 바로 넘어와서 모든 걸 실토해버렸다.

웃으며 얜 어때 했다.

예쁘장한데 정말 당돌하단 느낌이 확 드는... 중국계 캐나다인 같았다. 

사실은 얘가 그랬는데 이제 끝났어!

들어보니 여자애가 너무 적극적으로... 그러니 점점 힘들어졌나보다.

만났다 헤어졌다를 두번이나 한 끝에

이제 그냥 친구란다...

 

하하하!

내가 이런 얘길 듣고 웃을 수 있다니.

물론 훌륭한 연기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해야 아이들이 내게 모든 걸 편히 의논할 수있을테니

최대한 쿨하게 웃으며 신세대 엄마인 척 말했다.

한사람만 너무 오래 만나지 마...

여러 사람 만나봐야 알지...

헉 

어느새 난 진심을 말학고 있었다.

그랬더니 아들이

좀 안도한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

난 엄머가 이런 거 말하면 막 화낼 줄 알았는데...

그래서 다시한번 말했다.

아냐, 엄마 화 안내...

그런데 뭐든 지나치거나 너무 이르면 안돼.

판단 능력이 없거든 아직....

앞으로 이런 재밌는(?) 일들은

엄마한테 꼭 말해줘야 해 알았지?

 

과연 

어떤 여자를 데려오면 

아들과 그 여자를 함께 사랑하고 안아줄 수 있을 것인가.

그런 일들이

내게도 곧 다가올 것이라는 자각과 함께

많은 생각을 했다.

 

요즘도 가끔

아들이 전화기에 텍스트 메시지를 치며 슬며시 웃으면

누군지 들여다보고 싶어진다.

가끔 누구랑 그렇게 재밌게 얘기해 그러면

항상 

내가 아는 Boy 친구들 이름을 말한다.

엄마들한테 전화해 물어볼 수도 없고.

하긴 그 엄마들도 이젠 모를거야.

초딩 시절 소리지르며 뛰어놀던 그 아이들이 이젠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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