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ravo My life in 밴쿠버

내 딸의 첫사랑

by cheersj 2021. 2. 18.

 

엊그제 열살 생일을 맞은 나의 유별나고도 귀여우신 딸

이제 두자리 숫자의 나이를 갖게 되었다고

세상에서 가장 의젓한 소녀가 된 듯

어젯밤 방을 둘러보며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2학년 3학년 때 그렸던 그림과 사진들 그리고 

산처럼 쌓인 듯 그러나 나름 본인의 의도대로 진열되어 있는

수많은 캐릭터 인형들을 잠시 바라보더니 

선언했다.

엄마, 이번 주말에 내 방을 확 바꿔야겠어. 다 다시 꾸며야 하니 도와줄 수 있어?

맘소사, 또 얼마나 뒤집어 놓으려고... 

너무 아기같아 이젠 맘에 안든다는 것... 

얼마 전부터 하이틴 소녀들의 SNS로 본 LED Light을 갖고 싶다고 해 사준 조명이

책장 윗 칸 보물처럼 모셔놓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백일 사진과

묘한 부조화를 이루고 있긴 하지만

난 그 모든 게 다 소중하고 예쁘건만. 이제 좀 컸다고 저렇게 잘난 척을 하다니... 

 

지난 주말 토요일 아침

코로나19로 가까운 친구들이 모두 생일파티를 포기한 요즘 상황이 안쓰러워

난 머리를 짜내 온라인으로 공연해주는 마술사를 찾았고

같은 반 친구들을 Zoom meeting으로 초대해

아이들에게 함께 즐길 수 있는 시간도 줄 겸해서 생일파티를 해 주었다.

친구들도 딸도 너무 행복해 했고 

정성스런 선물들을 학교에서 받아오는 색다른 기쁨도 누렸다.

 

그러나 그 생일파티엔 가슴 아픈 이야기가 있다. 

바로 우리 딸의 현재진행형 첫사랑이 참석하지 못한 것이다.

Family day 연휴가 겹쳐 가까운 곳으로 Ski 여행이 예정되어 있었다는 것.

 

우리 딸의 첫사랑 이름은 마테오. 

금발에 파란 눈, 전형적인 유럽계 캐나다인인 그 꼬마는

우리 딸과 Kindergarten 같이 다닐 때부터 내 눈에 들어왔었다.

딸의 첫 생일 파티에

정장에 베레모까지 갖춰 쓰고 꽃다발을 들고 나타난 꼬마 신사,

둘이서 수줍은 듯 찍은 사진은 아직도 내 카메라에 소중히 저장되어 있는

너무나도 귀엽고 사랑스런 모습이다. 

 

그 아이는 

2학년 어느 봄날

Grouse Mountain으로 소풍을 갔던 날

벚꽃이 흩날리는 나무 그늘 아래에서

딸에게 고백을 했었다.

마테오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난 Kinder때부터 Crush가 한번도 변한 적이 없었어..."

딸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짐짓 수줍게 말했단다.

"응, 나도 널 좀 좋아하는 것 같긴 해"

 

그 사건은 한동안 아빠와 오빠에게도 말하지 않은

우리끼리의 비밀로 남아있었다. 

그 고백의 풍경이 너무 아름답고 사랑스러워 웃음이 막 났던 기억이 있다.

 

그 마테오가

생일 파티에 참석 못하는 아픔을 선물과 카드로 미리 대신하고 여행을 떠났다.

그런데 받아온 선물이

아주 작고 예쁜 상자에 담겼다?

두 하트가 서로 연결되어 있는

나도 탐나도록 예쁜 목걸이였다. 

 

작년 생일엔 

십자가가 달린 팔찌였는데

이번엔 목걸이

그럼 내년엔

반지? 

 

너무 귀여워 웃음이 났다.

아직 딸이 어려서인가?

아님 아들이 아니라서인가? 

 

남편에게 모든 걸 말해줬다.

아들 여자친구 얘기에 씩씩대던 내게

화통하게 웃어대던 그를 향한

복수심도 있었다.

너무 귀엽지 않냐고 했더니

어린 놈이 벌써부터... 하며 웃었다. 

 

하하

왠지 통쾌했다. 

 

우리 마테오가 예쁜 이유는

목걸이를 선물하고

처음 좋아한 순간부터 변치 않아서가 아니라

얼마 전 들었던 한 일화 때문인 이유가 더 크다.

 

점심 시간

욕심 많은 딸아이가 

도시락을 옆에 밀어두고

오후에 있을 Spelling Bee 시험을 위해 단어공부를 하고 있으니

옆에 와서 포크를 집어주며

한입이라도 먹고 하라고 잔소리를 해댔다는 것.

아 너무 사랑스럽다. 기특하다.

항상 가까이에 있는지

넘어지면 나타나 괜찮은지 걱정하고

남자아이들끼리 하는 축구시합에 꼭 초빙하는 게 그만의 애정 표현... 

 

나 왜 이렇게 다르지?

아들에게 접근하는 여자애에겐 경계심과 미움부터 가지면서

딸을 챙겨주는 남자아이를 이렇게 예뻐하다니?

 

나 이상하다.

그런데 기분이 좋다... 

훗날

어떤 사람을 데리고 나타날지 걱정 반 기대 반이지만 

일단 좋다. 

지금은 그냥 귀여우니까

'Bravo My life in 밴쿠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침에 찾아온 불길한 징조  (14) 2021.02.24
금요일 밤, 바람이 분다  (10) 2021.02.20
아들의 여자친구 그리고 나  (14) 2021.02.16
어쩌겠니, 그게 인생인 걸...  (14) 2021.02.12
이번 생은 할 수 없다  (2) 2021.02.1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