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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vo My life in 밴쿠버

조강지처를 버린 남자

by cheersj 2021. 3. 6.

 

 

점심시간 

오전 업무를 예정보다 일찍 끝낸 뒤

주문한 점심을 픽업하기까지 15분의 시간이 남아있는 휴식시간

조용한 음악을 들으며 집중하기 위해 열어 놓았던 유투브에서

우연히 미스테리 해외 사건 사고 같은 채널에 들어가게 되었다.

얼마 전 미국 기숙사에서 실종된 유학생 스토리를 2개 봤더니

비슷한 채널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그 스토리들을 보게 된 이유는

아들에게 더 많은 선택을 주기 위해

미국 대학도 생각해보라는 대화를 나눈 적 있기 때문이다. 

아빠 엄마 없이 먼 곳에 혼자 가서 공부할 수 있겠냐는 내 물음에 

아들이 웃으며 답했다.

엄마, 밴쿠버에도 좋은 학교가 많지만 

토론토에도 갈 수 있고

미국도 기회가 되면 갈 수도 있겠지. 

그리고 난 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런데 

엄마가 안 될 것 같아.

엄마는 일 하다가도 집에 있는 나랑 몇시간만 전화가 안 되면

패닉 상태가 되는데

내가 어느날 사정이 있어 하룻밤 전화를 못 받으면 어떻게 할거야?

둘 중 하나일 걸.

기절하거나

비행기 타고 올 것 같아...

난 웃었지만 속으로

그래 넌 너무 잘 알고 있구나 했었다. 

그리고 그 실종 스토리를 보고는

바로 마음을 접었다.

잠은 집에서 재워야겠다. 

그래, 난 자신이 없다.

그리고 얼굴 못 보며 멀리 공부하러 보낼 만큼의 욕심은 없구나. 

 

암튼

점심때 본 스토리는

어떤 미국의 30대 여자의 결혼생활부터 시작한다.

그녀는 명문대 의대생에게서 2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청혼받고 

주위의 부러움을 사며 결혼했으나

의대를 졸업한 남편은 곧바로 법대로 전공을 바꾸게 된다.

그동안 아이들은 하나 둘 늘어갔다. . 

의대 졸업만을 바라보며 혼자 아이를 키우던 상황에서 이젠 

남편이 로스쿨을 졸업할 때까지 또다시 혼자 아이 넷을 키우며

생활비를 벌기 위해 닥치는대로 일을 해야 했다. 

다행히 남편은 졸업 후 변호사가 되었고 5년 뒤 사무실을 열고 

경제적으로 큰 성장을 하게 되었다.

아, 이제 고생 끝 낙이 오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남편이 스물 두살의 아리따운 비서를 고용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들의 불륜을 알게 된 후부터

부부의 사이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었다.

그당시 그녀의 나이는 35세였고 

그 후 이혼을 요구하며 아이들까지 가로챈 남편을 상대로 한 투쟁은

42세까지 계속되었다. 

가족이 함께 살던 집에 혼자 남게 된 그녀는

남편이 그 집마저 팔아버린 것을 알게 되었다. 

분에 못이겨 남편과 그녀의 집에 찾아가 행패를 부린 연유로

정신병원에 입원까지 하게 된 뒤 퇴원한 그녀는

법적으로 이혼이 확정되고 택도 없는 위자료의 액수에 분개해

늦은 밤 남편의 집을 찾아간다.

잠든 남편과 새 여자를 향해 총을 겨눴고

그 둘은 그대로 사망했다.

 

그녀는 기소되어 재판이 진행되기 전까지

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해 자신의 억울함을 눈물로 호소했으며

세상 사람들의 의견은 반으로 나뉘었다.

 

그녀의 입장에서 충분히 그럴 만 했다.

어려운 시절 뒷바라지 한 조강지처를 배신했으니 죽어도 싼 놈이다. 

한편에선

그래도 살인은 정당화될 수 없다.

 

결국 그녀는 

가석방 없는 35년 형을 받고 아직도 복역 중이라고 한다.

 

가슴 아프고 어지러운 스토리였다.

맛있게 점심 먹으려 했는데 갑자기 입맛이 떨어졌다. 

뭐야 이런 후레자식은

그런데 눈물로 호소하는 그녀의 실제 영상을 보니

20대의 자료 화면에서 본 어여쁜 여인이 아니라 

악만 남은 몸집이 비대한 아줌마였다.

매일 저런 얼굴로 무섭게 닥달하면 

남자가 돌아오기 싫지 않았을까. 

아, 미안했다.

나도 중년의 아줌마인데

이런 생각 해도 되나 싶었다. 

그게 꼭 그 남자만의 잘못이었을까.

나도 남편에게 저런 얼굴로 화 내거나 따질 떄 많은데

나도 저렇게 보였으려나.

씁쓸했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신의를 지켜야 하고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진심을 다해야 한다.

그러나

때로는 일상에 치이고 현실에 눈이 멀어

아름다웠던 우리 시절의 모습은 온 데 간 데 없이

서로에게 함부로 하고 무신경할 때가 있는 것 같다.

 

너무 단순하고 유치한 결론이지만

혼자 생각했다.

다시 20대의 상냥하고 부드러운 여자로 돌아갈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적어도 그 때의 모습을 잊지는 말자.

헤쳐나가야 할 까마득히 먼 길들, 한치 앞 미래를 모르지만

그래도 애틋하게 함께 노력했던 순간들을

그리고 항상 서로 위로하며 따뜻하게 감싸줬던 그 순간들을. 

 

나 이래놓고 또 내일 아침 잊을거다.

내일 다시 이걸 읽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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