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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vo My life in 밴쿠버

감사할 것인가 불평할 것인가

by cheersj 2021. 5. 31.

 

아침에 눈을 떠 시계를 보니 아직 7시 43분

일요일 아침이니 한시간 더 자야겠다 생각하는 순간

정말 행복했다. 

그리고 곧 내일은 월요일이니 이미 정신없는 아침을 보낼 시간이네

에휴 주말은 왜이리 빨리 가는거야. 하는 생각과 함께 

그냥 오늘 아낌없이 즐기자 하며 다시 눈을 감았는데

아래층에서 발소리, 냉장고 닫는 소리가 생생히 들려왔다.

주말 아침 잠깐의 여유가 이토록 소중한 워킹맘인 나

직장이 있음에 감사할 것인가 매일 출근 준비를 해야 하는 삶에 불평한 것인가

주말 아침에도 늦잠 자길 싫어하는 남편을 둔 나

덕분에 루퍼스 새벽 산책도 쓰레기 분리수거 걱정도 없음에 감사할 것인가 

왠지 나만 게으른 듯한 자발적 반성에 이르게 하는 그의 부지런함을 불평할 것인가 

 

아들 방에 가보니 곤히 잠에 빠져 있다.

길게 내려 멋부린 앞머리 아래 가려져 있던 여드름이 드러나

듬성듬성 빨갛게 아침 햇살에 빛나고 있었다.

살짝 벌린 입은 아직 아기 같지만

어느새 싱글침대가 작게 느껴질 만큼 커버렸다.

이제 내 품안을 파고들던 아기가 아님을 또한번 느끼며 도둑 뽀뽀를 했다.

다행히 뒤척이다 다시 잠들길래 엉덩이도 한번 두들기고. 

그 옆 바닥엔 매트리스를 깔고 딸이 자고 있다. 

자기 방을 옆에 두고 주말엔 꼭 오빠 방에서 자겠다고 우기는 바람에

지난 밤 한바탕 혼을 냈었다. 

열네살 오빠와 열살 여동생, 티격태격 하면서도 뭐가 그렇게 좋은지

잘 시간이 지나도록 낄낄거리고 수다 떨며 놀고 있는 걸 몇번이나 들켰지만

그래도 편히 자라고 접는 매트리스를 사서 주말에 펼쳐주곤 한다.

그럴 때마다 꺄르륵 꺄르륵 신나하는 딸의 모습에 미소 짓지만 그것도 잠시.

왜 아직도 안자냐고 잔소리를 하다가

급기야 12시가 넘으면 폭발하는 내게서 벼락이 내리고 만다.  

재밌는 비밀도 공유하고 의지하며 우애 좋은 아들 딸을 보며 감사할 것인가

밤마다 장난 치고 안 자고 툭하면 티격태격 전쟁을 치르는

이 롤러코스터같은 일상에 불평할 것인가. 

 

오늘 오후도 어김없이 우린 필드에 나왔다. 

어젠 카트에 딸을 태우고 신나게 달리며 봄햇살의 여유를 즐겼지만

음악 틀어놓고 엄마랑 수다 떠느라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남편에 말에

오늘은 못이기는 척 걸어서 셋을 내보내고 

난 여기 레스토랑에 앉아 거의 한달 만에 티스토리를 열었다. 

그동안 시간적 여유도 마음의 여유도 없어 아예 접어두었던 일기장. 

다른 분들의 좋은 글을 읽고 웃기도 하고 반성도 하며 

내 일상과 마음을 정리해보며 일기를 써나가는 이 시간 

이런 나만의 시간이 없는 삶은 메마르고 공허하게 느껴진다. 

이젠 한동안 접어두면 나의 성찰의 시간을 외면한 듯

또는 숙제를 미뤄두었을 때 생기는 이런 죄책감에 불평할 것인가.

나의 마음을 돌아보고 정신을 가다듬는 풍요로운 시간을 갖게 된

이 값진 시간의 버릇에 감사할 것인가.

 

불평할 것인가 감사할 것인가

매 순간 내게 찾아오는 기분 좋은 질문이다.

이미 답을 알고 있기에

쉽지 않지만 값지고 기분 좋은 질문이다. 

사소한 일로 생기는 잠시동안의 불평이나

어쩌다 힘든 일을 겪어 긴 불평과 고통의 시간을 보낸 뒤에라도

어김없이 다시 감사의 마음을 갖는 나 자신을 알기에. 

실수 뒤 반성도

불평 뒤 감사도

아낌없이 할 줄 아는 내게 감사하며.

오늘도 감사하는 일요일 저녁을 보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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