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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vo My life in 밴쿠버

엄마

by cheersj 2021. 6. 1.

 

어린 시절, 난 엄마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정말 평범하지 않은

엄마에 대한 첫 문장일 듯하지만

그냥 난 그랬다.

 

엄마가 안아준 기억이나 뭔가를 먹여준 기억, 씻겨준 기억조차 없으며 

당연히 내가 지금 딸에게 하듯

예뻐 죽겠다는 포옹과 뽀뽀 세례 한번  받아본 기억이 없다.

 

엄마는 언제나 화려한 옷차림에 완벽한 화장을 하고 있었으며 항상 바빴다.

 

엄마는 나의 초등학교 시절

진한 향수 냄새를 풍기며 학교에 등장하곤 하는 육성회장이었으며

내가 맘에 들어하지 않는 내 짝을 바꾸기 위해

시골에서 서울 사립학교로 갓 부임한 순진한 담임 선생에게 돈봉투를 건네

모든 학생들의 자리를 바꾸도록 만든 엽기적인 행위도 서슴지 않았던

그런 정말 드라마에나 나올법한 엄마였다.

 

그런 일들이 거듭되자 모범생이었던 난 엇나가기 시작했고

6학년이 되었을 때 전교회장 자리를 놓치자 드디어 엄만 날 학교에 안 보내기 시작했다. 

과외선생을 붙여 특수학교 보내기 작전에 돌입했다. 

 

그리고 마침내 난 그 중학교에 수석입학 통보를 받았고

졸업을 앞두고 3개월만에 금의환향하듯 다시 등교한 학교

친구들에게 축하 박수를 받으며 교실에 등장하고 나서야

엄마는 회심의 미소를 띄었었다. 

 

나는 대학 시절까지도 엄마에게 특별한 애정을 갖고 있지 않았다.

고등학교 시절, 도시락을 들고 찾아온 엄마에게 달려가 포옹하는 친구의 모습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으며 동시에 씁쓸한 마음으로 인사를 했던 기억이 난다.

난 정말 힘들었던 시절 엄마 아빠와 헤어져 있던 순간들에도

별로 엄마를 그리워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난 지금까지 나만의 결론을 내리고 살아왔다.

나와 아이들의 끈끈한 사랑에 대해. 

 

내가 정당하게 받을 수 있는 그들의 사랑은

내가 내 아이들을 키우며 닿았던 

수많은 손길 그리고 땀 눈물 그 모든 정성에 비례하는 것이다.

내가 먹이고 씻기고 안아주고 입히고 

때론 혼내고 부딪히고 눈물도 흘렸지만 

그 모든 나의 시간과 정성과 아픔이 쌓여

내 아이들의 마음속에 사랑이 차곡차곡 만들어지는 것이므로

난 내 엄마처럼 자신의 재력이나 여건으로 

남의 손에 내 아이를 씻게 하고 먹게 하고 자게 하는 짓을 절대로 하지 않으리라.

비록 나도 지금 일을 하고 있으나

가족 하나 없는 타국에서

적어도 함께 있는 시간만큼은 온 정성을 다해 내 손으로 씻기고 안아주고 재웠으며

열이 나서 데이캐어에 못 보내는 날엔

아픈 아기를 데리고 출근도 해 가며 울기도 많이 했었다.

 

그러므로

내가 엄마에게 애착이 덜하거나 효심이 덜하다면

그건 엄마가 나의 유년기에 쏟았어야 할 정상적인 애정이 부족했기에

응당 받아야할 부족한 사랑의 댓가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요즘

이젠 할머니 소리를 듣게 된

더이상 화려하지 않은

엄마의 한마디 한마디를 의지하게 된다.

왜일까. 

 

난 이제 아이들로 행복하거나 회사일로 속상할 땐

엄마에게 선물하듯 아이들 사진을 줄줄이 보내기도 하고

때론 증오하는 인간의 욕을 육두문자 섞어 뜬금없이 날리기도 한다.

그럴 때 신속하고도 속 시원하게 돌아오는 엄마의 답은참으로 주옥같다. 

 

예를 들면 오늘처럼 밑도 끝도 없이

엄마, 잘 있어? 난 오늘 미친 노인네가 열받게 해서 그냥 맥주 한잔 하고 자려고 했더니

"감히 누가 우리 딸을 열 받게 해...  무시하고 묵묵히 할 일 하세요..  

 열 받으면 노인한테 지는 거라구요" 

 

누구나 해줄 수 있는 말들인데 

그냥 엄마가 해주는 말이라서 그런가

다 알고 있는 듯한 말에 웃음이 픽 나왔다. 

 

엄마는 날 안 씻겨 재웠어도 안아주지 않았어도

엄마는 엄마인가 보다. 

 

방금 내 딸에게 씻으라 자라 빽빽 소리 질렀는데

잠든 얼굴을 보니 또 마음이 아파진다.

또 혼냈네. 아 이런 것만 기억하면 어쩌지.

나중에 우리 딸도 마음이 힘들 때

한마디 툭 던진 내 말 한마디에 위로 받을 수 있을까.

 

엄마 미안해

툭하면 장난처럼 비난하듯 꺼내곤 하는 옛날 일들

엄마도 그땐 그게 맞는 줄 알고 최선을 다했겠지.

 

내가 엄마 보란듯이 내 아이들 더 잘 키워보려 하는데

엄마, 이거봐 이렇게 키워야지

말하고 싶은데 

나도 모르겠다.

그냥 어찌 키우든

맞든 틀리든

그래도 엄마의 마음을 알게 되면

그래도 엄마밖에 없다는 걸

언젠가는 알게 되나봐.

마음이 복잡한 밤 

이렇게 늦도록 엄마를 향해 마음을 털어놓는 걸 보면 말이야.

 

미안하지만 참 별로였는데 말이야

그래도 지금은 그냥

엄마가 있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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