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90

감사할 것인가 불평할 것인가 아침에 눈을 떠 시계를 보니 아직 7시 43분 일요일 아침이니 한시간 더 자야겠다 생각하는 순간 정말 행복했다. 그리고 곧 내일은 월요일이니 이미 정신없는 아침을 보낼 시간이네 에휴 주말은 왜이리 빨리 가는거야. 하는 생각과 함께 그냥 오늘 아낌없이 즐기자 하며 다시 눈을 감았는데 아래층에서 발소리, 냉장고 닫는 소리가 생생히 들려왔다. 주말 아침 잠깐의 여유가 이토록 소중한 워킹맘인 나 직장이 있음에 감사할 것인가 매일 출근 준비를 해야 하는 삶에 불평한 것인가 주말 아침에도 늦잠 자길 싫어하는 남편을 둔 나 덕분에 루퍼스 새벽 산책도 쓰레기 분리수거 걱정도 없음에 감사할 것인가 왠지 나만 게으른 듯한 자발적 반성에 이르게 하는 그의 부지런함을 불평할 것인가 아들 방에 가보니 곤히 잠에 빠져 있다. 길.. 2021. 5. 31.
아들, 내 아들 봄바람이 아직 차갑지만 햇살은 따사로운 평화로운 토요일 오후 Junior Golf Tournament가 열리는 Morgan Creek에 도착했다. 경험삼아 도전해보기로 했던 아이들의 대회 시즌이 막 시작되어 이제 세번째 대회. 아직은 조금씩 실력이 늘어가는 과정에 있어 그런지 평소 느긋하다못해 때론 답답하기까지 한 아들의 얼굴엔 왠일로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열 네살이므로 캐디도 부모도 따라갈 수 없으며 그룹 플레이어의 스코어까지 서로 기록하며 긴장감 속에 18홀을 완주해야 하는 먼 길이다. 출발 시간이 되었고 헤어져야 하는 입구에 섰다. 난 아들의 목에 매달리듯 빅 허그를 한 뒤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괜찮아, 잘 할거야..." 그리고 떠나보냈다. 고작 다섯 시간의 헤어짐을 위한 작별 인사가 다섯 .. 2021. 4. 15.
그래도 꿋꿋하게 3월 29일 BC 보건당국의 락다운 발표로 밴쿠버의 모든 식당들이 다시 실내 테이블을 치워야했다. 코로나19 3차 확산으로 확진자가 연일 1000명 이상을 기록하는 상황에서 부활절 연휴를 앞두고 사적 모임 제재를 완화할 수도 있다던 호언 장담은 섣불렀던가. 부랴부랴 내놓은 대책은 다시 셧다운 그리고 백신에 희망을 걸자... 이제 겨우 활기를 찾아가던 식당들은 다시 테이프를 두르거나 치워버린 테이블로 썰렁한 어둠 속에서 테이크 아웃 주문만을 받고 있었다. 점심 메뉴를 고민하다 후배와 수다를 떨며 찾아간 곳은 북창동 순두부 우린 거기서 사이좋게 매운맛 섞어 순두부와 고기 콤보를 픽업했다. 북적이던 실내는 어두컴컴했고 내일 봐 하며 우린 헤어졌다. 후배는 오후 재택 근무라 집으로 난 사내 근무라 다시 사무실로.. 2021. 4. 4.
눈물 덜어놓기 세상에서 하나뿐인 내 동생 내가 다섯 살이 되어가던 어느 크리스마스에 온 가족이 나와 오빠를 할머니에게 남겨두고 어디론가 사라졌었고 우린 거실 카펫의 물결 무늬 문양을 도로 삼아 미니카를 갖고 레이스를 하며 놀았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몇일 뒤 인형같이 작은 아기가 내게 동생이란 이름으로 찾아왔었다.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인연은 각별하고 가슴 아프다. 극성스런 엄마 밑에서 우리 오빤 순종적이고 듬직한 큰아들 난 매사에 승부욕 강하며 반항심 많은 큰 딸 뭐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아무 생각 없는 막내 우리 셋 서로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녀는 이 지구상에서 나와 가장 반대되는 캐릭터를 찾아내려 한다면 1등으로 선택될 만큼 정반대의 성향을 가진 나의 하나뿐인 동생이다. 초등학교 때 누구누구네의 동생이라는 말.. 2021. 3. 8.
Missing Person 토요일 아침 루퍼스와 함께하는 산책길 트레일 입구에 들어서면서 매일 지나치던 전단을 다시 보게 되었다. 한달 전 기사화 되며 알려진 어느 여인의 실종 아직도 이 지역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전단지의 낯익은 얼굴이다. 처음 소식을 접했을 때부터 너무나도 안타깝고 남의 일처럼 멀게 느껴지지가 않았다. 실종 지역이 내가 사는 곳에서 10여분 거리 나의 베프가 10년 넘게 살고 있어 수없이 드나든 친숙한 타운이었고 실종된 여성의 나이도 우리와 비슷했으며 아직 어린 아이들의 엄마이며 누군가의 아내였다. 어느 날 평소처럼 집 앞을 산책 나갔다가 그 후로 한달이 넘도록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이후 이 지역과 우리 동네를 포함한 트라이시티 지역에는 흰색 밴이 출몰해 여성을 납치해 간다는 괴소문이 떠돌기도 했기에 난 루퍼.. 2021. 3. 7.
조강지처를 버린 남자 점심시간 오전 업무를 예정보다 일찍 끝낸 뒤 주문한 점심을 픽업하기까지 15분의 시간이 남아있는 휴식시간 조용한 음악을 들으며 집중하기 위해 열어 놓았던 유투브에서 우연히 미스테리 해외 사건 사고 같은 채널에 들어가게 되었다. 얼마 전 미국 기숙사에서 실종된 유학생 스토리를 2개 봤더니 비슷한 채널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그 스토리들을 보게 된 이유는 아들에게 더 많은 선택을 주기 위해 미국 대학도 생각해보라는 대화를 나눈 적 있기 때문이다. 아빠 엄마 없이 먼 곳에 혼자 가서 공부할 수 있겠냐는 내 물음에 아들이 웃으며 답했다. 엄마, 밴쿠버에도 좋은 학교가 많지만 토론토에도 갈 수 있고 미국도 기회가 되면 갈 수도 있겠지. 그리고 난 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런데 엄마가 안 될 것 같아. 엄마는 일 .. 2021. 3.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