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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vo My life in 밴쿠버72

아직도 속이 비었거나 혹은 철이 없거나 지금은 어느덧 낼 모레 50 중반을 바라보는 나이가 된, 가까운 언니가 있었다. 그녀는 항상 명랑 쾌활하며 머리부터 발끝까지 빈틈없이 치장을 하고 다녔기에 항상 화려하고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이었다. 아주 오래 전 그녀의 두 딸이 어릴 때, 그리고 우린 아이가 없을 때 다같이 갔던 한식당에서 불판에 지글지글 고기가 익는 동안 아이들이 식탁에 기어오르려 하는데도 아랑곳 않고 그녀는 열심히 양념갈비가 구워지자마자 본인의 입에 넣느라 바빴다. 그녀의 남편은 아이 하나를 옆에 끼고, 하나는 주저 앉히며 한입이라도 더 먹이느라 바빴다. 우린 그저 그런 장면들과 어수선한 식사자리에 익숙하지 않았기에 머릿속이 하얗게 되더니 멍해져서 밥이 어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겠고 정말로 아기를 갖고 싶지 않다는 우리 생각이 참 올바.. 2020. 12. 29.
다시 수험생이 되어버린 너에게 조금은 유별난 그리고 까칠한 사람에 속하는 내가 오랫동안 동경했었고 존경해 온 분이 있다. 바로 우리 큰 시누이, 그냥 큰언니라 부르지만 암튼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우리 남편이 막내 동생인지라 20여년 전 처음 인사 드릴 때부터 나를 특별히 아껴주시고 예뻐해 주셨던 언니다. 첫인상은 어릴 때 우리 남편 친구들이 모두다 짝사랑에 빠졌다는 소문만큼이나 너무나도 곱고 단아했으며 오랜 유럽 유학 생활 때문이었을까, 이국적인 고상함에 때로 허당끼 있고 순수한 유머와 웃음까지. 바로 내가 되고 싶은 사람 '아름다운 지성미를 갖췄는데, 게다가 편안한 사람' 그 자체였다. 급히 수술 받을 일이 있어 오랜만에 혼자 한국을 잠시 방문했을 때 몸이 회복되지 않은 상태로 시어머니 호출에 시댁에 간 나를 지금 이 몸에 편히 쉬.. 2020. 12. 28.
'우리 이혼했어요'를 보다가... 원진살이 뭔데? 지금으로부터 어언 20여년 전 만난 지 6개월만에 "같이 캐나다로 떠나겠습니다"했더니 양쪽 집 반응이 처음엔 같았다. 더 심사숙고 하라며, 좀 두고 보며 말리던 두 집안의 답이 같은 듯 달랐다. 지금의 시댁 즉 남친 쪽 집에서는 "도대체, 너 하던 일은 어쩌고 갑자기? 그럼 결혼식은?" 우리 집, 변덕 심한 딸을 잘 아는 우리 아빠 엄마는 "유학 가고 싶은거야, 결혼이 하고 싶은 거야? 계획을 확실히 밝혀라 - 아빠 혹시 모르니 약혼식만 하고 가 - 엄마" ???? 지금의 이 시점에 생각해도 참 현실적으로 앞서갔던 우리 엄마의 답변이었다. 내 마음이 언제 바뀔지 모르니 호적은 건드리지 말아라 이건가. 그렇게 불꽃처럼 유별난 연애로 위태롭게 보였던 우리 약혼에 결혼까지 일사천리로 해치우고 날아온 이곳에서 .. 2020. 12. 27.
빼앗긴 2020년에도 첫눈은 내렸다 2020년 한해가 몇일 남지 않았다. 봄을 기다리던 2월 그 이후의 시간들은 마치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말들 감염, 위기, 봉쇄, 전파, 방역, 격리, 사망, 확진 등등과 같은 말들로 정신없이 채워지며 눈깜짝할 새 연기처럼 사라져갔다. 언제나처럼 겨울비만 실컷 보여주던 밴쿠버에 2020년을 송두리째 빼앗긴 듯한 허탈한 마음을 달래주듯 드디어 오늘 아침 첫눈이 내렸다. 회사, 내 자리, 큰 통유리 너머 포근포근 하얗게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울컥해 잠시 눈을 떼지 못하고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매년 보던 같은 눈, 예쁜 눈인데 왜 이렇게 생경하고 쓸쓸해 보일까. BC주는 사흘새 확진자가 1600명을 넘어섰고 사망자 40여명 온타리오는 끝내 락다운에 들어갔다. 그래도 첫눈은 내렸다. 하루종일 비가 .. 2020. 12. 22.
다섯 아이를 두고 떠나버린 엄마, 어떻게 눈을 감았을까 몇 해 전 남편의 지인 집들이에 초대 받아 잠시 들렀던 저녁 식사에서 그녀를 처음 만났다. 우리 딸 또래의 큰 딸과 어린 남동생을 돌보며 분주하던 그녀 남편에게 존댓말을 하는 모습이 신기해 인상적이었고 나이 차이가 별로 나지 않는 남매를 통제하기에 엄마가 너무 착하기만 한 거 아닌가 하는 우려를 잠시 했던 기억이 난다. 그녀의 남편은 이민 후 이런 저런 비즈니스에 열심히 도전하며 가족들에게 헌신하는 성실한 사람이라고 들었다. 그리고 또 싹싹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그 다음해 그녀가 셋째 아이를 낳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또 얼마의 세월이 흘렀나 했더니 넷째 아이를 가졌다는 소식이 들렸다. 아 정말 축복이네 하는 사람도 있었겠지만 난 사실 맙소사 그랬다. 정말 미안하지만 착한 엄마의 분주한 뒷모습이 먼.. 2020. 12. 20.
'한번도 화 내지 않기' 도전 #9일 글의 힘이란 정말 신기한 것이다. 한번도 화 내지 않기를 결심한 지 어느덧 9일째 되는 날이다. 첫 3일 이후 몇번의 작은 고비들이 있었다. 아무리 굳은 결심을 하고 착한 마음을 먹어도 일상에서 피할 수 없는 것들 나를 자극하거나 거슬리는 것들을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으므로 이전과 같은 상황이 닥쳤을 때 확 무언가가 치밀어 오르는 것이 살짝 느껴졌다. 그 순간 나는 나 자신을 관조적으로 바라보기 위해 잠시 노력했고 문득 내가 여기에 적어 놓은 도전 1일차의 결심이 떠올랐다. 순간 나를 제어하는 힘이 생겼다. 나도 모르게 심호흡을 했으며 혼자만의 결심이지만 소중한 나의 일기에 문서화 해 놓은 문장들이 떠올랐으며 이것마저 지키지 못한다면 난 내 생각을 글로 옮겨 놓을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020. 12.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