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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 2020년에도 첫눈은 내렸다 2020년 한해가 몇일 남지 않았다. 봄을 기다리던 2월 그 이후의 시간들은 마치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말들 감염, 위기, 봉쇄, 전파, 방역, 격리, 사망, 확진 등등과 같은 말들로 정신없이 채워지며 눈깜짝할 새 연기처럼 사라져갔다. 언제나처럼 겨울비만 실컷 보여주던 밴쿠버에 2020년을 송두리째 빼앗긴 듯한 허탈한 마음을 달래주듯 드디어 오늘 아침 첫눈이 내렸다. 회사, 내 자리, 큰 통유리 너머 포근포근 하얗게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울컥해 잠시 눈을 떼지 못하고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매년 보던 같은 눈, 예쁜 눈인데 왜 이렇게 생경하고 쓸쓸해 보일까. BC주는 사흘새 확진자가 1600명을 넘어섰고 사망자 40여명 온타리오는 끝내 락다운에 들어갔다. 그래도 첫눈은 내렸다. 하루종일 비가 .. 2020. 12. 22.
다섯 아이를 두고 떠나버린 엄마, 어떻게 눈을 감았을까 몇 해 전 남편의 지인 집들이에 초대 받아 잠시 들렀던 저녁 식사에서 그녀를 처음 만났다. 우리 딸 또래의 큰 딸과 어린 남동생을 돌보며 분주하던 그녀 남편에게 존댓말을 하는 모습이 신기해 인상적이었고 나이 차이가 별로 나지 않는 남매를 통제하기에 엄마가 너무 착하기만 한 거 아닌가 하는 우려를 잠시 했던 기억이 난다. 그녀의 남편은 이민 후 이런 저런 비즈니스에 열심히 도전하며 가족들에게 헌신하는 성실한 사람이라고 들었다. 그리고 또 싹싹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그 다음해 그녀가 셋째 아이를 낳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또 얼마의 세월이 흘렀나 했더니 넷째 아이를 가졌다는 소식이 들렸다. 아 정말 축복이네 하는 사람도 있었겠지만 난 사실 맙소사 그랬다. 정말 미안하지만 착한 엄마의 분주한 뒷모습이 먼.. 2020. 12. 20.
'한번도 화 내지 않기' 도전 #9일 글의 힘이란 정말 신기한 것이다. 한번도 화 내지 않기를 결심한 지 어느덧 9일째 되는 날이다. 첫 3일 이후 몇번의 작은 고비들이 있었다. 아무리 굳은 결심을 하고 착한 마음을 먹어도 일상에서 피할 수 없는 것들 나를 자극하거나 거슬리는 것들을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으므로 이전과 같은 상황이 닥쳤을 때 확 무언가가 치밀어 오르는 것이 살짝 느껴졌다. 그 순간 나는 나 자신을 관조적으로 바라보기 위해 잠시 노력했고 문득 내가 여기에 적어 놓은 도전 1일차의 결심이 떠올랐다. 순간 나를 제어하는 힘이 생겼다. 나도 모르게 심호흡을 했으며 혼자만의 결심이지만 소중한 나의 일기에 문서화 해 놓은 문장들이 떠올랐으며 이것마저 지키지 못한다면 난 내 생각을 글로 옮겨 놓을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020. 12. 16.
다시 비오는 일요일, Rufus와 빗속을 걷다 지난 일요일 빗속을 산책했던 기억이 바로 어제처럼 가깝게 느껴지는데 어느새 또다시 일요일이 찾아왔다. 겨울비가 시원하게 내렸다. 아니, 사실은 강풍을 동반한 매섭고 추운 비였는데 일요일 아침이라는 청량감에 차가운 비바람도 기분좋게 느껴졌을지 모른다. 매일 새벽 Rufus를 산책시키는 남편을 하루 쉬게 해주려 했는데 지난 밤 늦게 자 피곤해 하는 아들을 놔두고 본인이 "같이 가줄게" 하더니 따라 나서네. 아니 뭐, 안그래도 되는데? 난 딸이랑 오붓한 산책도 좋은데. 암튼 Rufus는 유독 좋아하는 딸이 길을 나서자 더 신이 나 보였고 우린 비를 동반한 폭풍을 즐기며 걷기 시작했다. 셋이서 걸어오는 모습이 평화롭고 예뻤다. 자, 이제 우리 착한 Rufus는 중요한 볼일을 보러 저 강둑 밑으로. 기특한 우리 .. 2020. 12. 14.
'한번도 화 내지 않기' 도전 #3일 엊그제 도전을 시작한 '한번도 화 내지 않기' 3일 째 되는 날 오늘은 토요일이다. 결심 첫날은 아직 생각의 정리와 반성이 계속되는 단계였기에 잘 지켜냈다. 둘째날인 어제는 마음의 여유를 갖고 쉬어가기 위해 난 지금 이걸 끝내야 하고 저건 저렇게 되어 있어야 하고 넌 이런 자세로 행동해야 하고 넌 그렇게 대답하면 안되는데 뭐 그런 것들을 잊기로 했다. 그럴 수도 있지. 그냥 그럴 수도 있지. 그렇게 관대해 지기로 마음 먹었다. 나 자신 또한 너무 부지런하지 않게 하루를 보내려 했었다. 물론 회사 업무는 책임을 다했지만 중간에 바람 쐬러 나가 가까운 Spa에 가서 머리가 덜 빠진다는 샴푸와 컨디셔너 에센스 세트를 구경하고 왔다. 곧 만날 친구의 생일에 선물하고 싶은데 아무리 기능성 이지만 그래도 좀 예쁘게.. 2020. 12. 13.
'한번도 화 내지 않기' 도전 #1일 어릴 때 꽤나 까탈스런 성격이긴 했지만 지금까지 친구, 대인관계도 대체로 무난했고 사회생활도 오래 하고 있는 걸 보면 특별히 못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현재 가끔 맘에 들지 않는 면이 보일 때 밉긴 하지만 살면서 티격태격 부딪히기도 하지만 그래도 마음 맞고 듬직한 남편이 있고 내 맘대로 되지 않아 속상할 때가 가끔 있긴 하지만 그래도 말 잘듣고 건강한 눈에 넣어도 안아플 아들 딸이 곁에 있다. 그런데 호르몬에 이상이 온걸까 잠자고 있던 못된 성격이 "이제 본색을 드러내라"하며 도발하는 것일까 나도 모르는 스트레스가 마음 깊은 곳에 쌓여 있다가 의외의 순간 건드려지면 필요 이상의 화로 표출되는 것일까 요즘 자꾸 나의 가장 소중한 사람들에게 상처 주는 일을 만든다. 남편이 아무렇지 않게 한 말에 방어적으.. 2020. 12. 11.